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교육부 출입기자단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자 수만 보도하고 출신학교나 신상 보도는 하지 않기로 결의한다. 고교 서열화로 인한 교육현장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앞서 1997년엔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 대학별 수석합격자 보도를 자제하자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 당시 기자들의 결의엔 어떤 사안은 보도하지 않는 편이 사회 발전에 더 기여한다는 고민이 담겨 있다. 신문·방송·통신 등 23개 언론사가 참여했는데, 인터넷 매체들이 발달하지 않아서 출입기자단 합의로 정보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던 때였기에 가능했다. 언론사의 난립과 과열 경쟁으로 사회에 이익이 되는 기사보다 해악이 되는 기사들이 더 많아진 것 같은 오늘날, 더 필요하지만 더 불가능해진 시도이다.
□ 하지만 교육부 기자단의 결의는 지속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 수능 만점자 신상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도 수능 만점자 유리아씨, 표준점수 전국 수석 이동건씨에 관한 보도가 줄을 이었다. 출신 고교, 재수 학원, 지원할 대학과 학과, 장래 희망까지 알려졌다. 어쩌면 수능 만점자 보도는 기자들의 자제로만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고, 근본적으로 국민적 호기심이 사라져야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 주요 선진국 언론에선 대학 입시 성적 보도를 중시하지 않는다. 의미를 부여할 사회적 성취로 보지 않고 국민들도 관심이 없어서일 것이다. 반면 한국은 ‘대입 성적’ 자체를 큰 성취로 보고 치하하는데, 이게 뜻하는 바는 암울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은 투입하는 교육비에 비해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이 가장 낮다. 대입 성적을 위해 교육비는 몽땅 쓰고 10대들을 갈아 넣지만, 이 입시지옥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은 없다. 대신 높은 10대 자살률, 심각한 저출생, 노동시장 수요·공급 불균형을 만들어낼 뿐이다. “한국을 현재의 위치로 이끈 높은 교육열이 이제 미래 경쟁력을 방해하고 있다”는 블룸버그 기사를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