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우파 정당이 난민 신청자를 타국으로 보내 망명 심사를 받도록 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나섰다. 영국 정부가 추진 중인 이른바 '르완다 정책'과 유사한 방식으로 난민 유입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반(反)난민 정책'으로 세를 키워가고 있는 극우 정당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1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의 중도 보수 성향 제1야당인 기독민주연합(CDU)은 지난 11일 난민 신청자를 제3국으로 이송해 심사하는 방안을 담은 정책집을 발표했다. CDU는 "유럽연합(EU)에 도착한 난민을 '안전한 제3국'으로 보내 그곳에서 망명 신청을 처리하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상 국가로는 아프리카의 르완다·가나, 또는 EU 회원국이 아닌 유럽의 몰도바·조지아 등이 거론됐다. 옌스 슈판 기독민주당 원내 부대표는 "이런 정책을 4~8주 동안 꾸준히 실시하면 (독일에) 난민 신청을 하는 인원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CDU의 발표 배경에는 영국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르완다 정책'이 있다. 자국에 유입된 난민들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 망명 심사를 받게 하고, 그곳에 정착하도록 하는 방안으로 보수당 소속인 리시 수낵 총리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마디로 '난민 심사 외주화'를 통해 난민 유입 자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억제책인 셈이다. 르완다 정부에선 그 대가로 1억4,000만 파운드(약 2,315억 원) 이상을 지급받기로 했다.
다만 영국 안팎에선 '난민 인권 침해 소지가 많다'는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장 영국 대법원조차 지난달 15일 "(르완다로) 이송된 난민 신청자가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가능성이 있다"며 르완다 정책에 위법 판단을 내렸다. 르완다가 난민에게 '안전한 국가'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이달 5일 난민 신청자 안전 보장 조약을 르완다 정부와 체결하고, 13일 관련 법안을 하원에서 가결시키는 등 이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독일판 르완다 정책'인 CDU의 난민 줄이기 전략은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기세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CDU 및 자매정당인 기독사회연합(CSU)이 31%를 기록해 1위에 올랐으며, AfD가 22%로 추격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민 정책은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이슈로 꼽히는데, AfD는 극단적인 반난민 입장을 내세우며 지지를 얻고 있다.
독일 사례에서 보듯, 영국발 '난민 타국 이송' 정책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가디언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난민을 알바니아로 보내자고 제안했고, 오스트리아 역시 이런 정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