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보세요. 고양이가 돼서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어요."
서재 한가운데를 차지한 책상 앞에 앉은 김초엽 작가가 갑자기 조이스틱을 꺼내더니 PC 게임을 실행했다. 소설 집필 기간에 어떻게든 쥐어짜낸 문장들이 채웠을 데스크톱 모니터에서 사이버펑크(과학기술이 발달한 디스토피아적 미래)풍의 형형색색 게임이 펼쳐진다. 폐허가 된 미래 사회에서 길고양이가 돼 생존해야 하는 게임 '스트레이'다. 김 작가는 머리를 식혀야 할 때마다 게임 속 세상에 자신을 집어넣는다. 그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거리면서 동시에 다른 창작자가 직조한 세계를 체험하는 과정인 것처럼 보였다. "사실 요즘 이 방은 서재가 아니라 취미방이에요. 하하."
김 작가가 서재에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책 역시 게임에 관한 책. 김 작가는 "'인생책' 같은 거창한 선택은 아니지만, 곧 SF 게임 에세이를 쓸 예정이라 최근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책"이라며 C. 티 응우옌 미국 유타대 철학과 부교수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꺼내 보였다. 어찌나 집중해서 읽었는지 색색의 포스트잇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붙어 있다. 책은 음악, 미술 같은 전통적인 예술과 달리 게임이 인간의 '행위성'을 매체로 삼아 독자적인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이라 주장한다.
"이전의 게임 비평은 내러티브에 주목하는데 이 책은 행위성에 집중해요. 스트레이 게임만 해도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 고양이기에 문을 열지 못해 벽을 타고 올라가서 열려 있는 창문을 찾아 헤매야 하죠. 게임을 통해 고양이 돼보는 체험들이 알게 모르게 제게 영감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