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섭던 2020년 4월. 30년 차 노숙자 A(65)씨가 때 묻은 마스크를 쓴 채로 서울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곳이 관공서지만, 저소득층 재난지원금을 준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찾아왔다. 그의 손엔 고추장, 된장, 풋고추 등 돈을 타면 사고 싶은 물건들을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가 들려있었다.
"예? 내가 죽었다고요?"
정말 오랜만에 관공서를 찾은 A씨는,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등록상 자신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다는 사실이었다. 멀쩡히 산 사람을 고인으로 만든 사람은 그의 친누나였다. A씨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다가 가족들과 연락이 끊고 산 지 오래됐다. 수십 년을 안 본 누나가 자신을 실종신고해 사망자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살아서 죽은 이는 A씨만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사망자 처리된 주민등록을 부활시키기 위해 법원을 찾는 이가 최소 매년 수십 명이다. 17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전국 가정법원의 '실종선고'와 '실종선고 취소' 건수는 각각 1만5,378건, 1,202건이다. 법원은 실종 상태로 5년(선박·항공기 등 실종은 1년)이 지난 사람을 가족이나 검사 등의 청구에 의해 숨진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런 실종선고의 7.8%가 취소되는 셈이다.
'살아 있는 망자'의 상당수는 노숙자로 추정된다. 이들이 사망 처리를 되돌리기(실종선고 취소)가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노숙자란 특성 때문에 꽤나 많은 이가 아예 자신의 생존을 국가에 재등록하는 절차 자체를 포기하고 만다.
상당수 노숙자들은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관공서를 방문하는 일이 아예 없기 때문에, 자신이 사고나 범죄에 연루된 다음에야 실종선고(사망 처리)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 유모(64)씨는 2017년 인력거를 끌다 승용차와 접촉사고가 난 뒤에야 경찰 신원조회 과정에서 본인이 서류상 사망 상태라는 걸 들었다고 한다. 법원이 실종선고를 내린 지 2년이 넘은 시점이다.
서류상 죽음을 안다 해도 취소 심판을 청구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인지대까지 납부해가며 △청구서를 작성하고 △법원의 보정명령을 받아 △주민등록표등본 등을 뗀다는 게 쉽지 않다. 서울 구로구에서 노숙하던 B(53)씨가 6월 절도죄로 검거되기 전까지 6년간 사망자로 살아왔던 것도 "법률 자문을 받을 길이 없어서"였다고 한다.
실종선고 당시 주소지가 현재 거주지와 다르면 일은 더 복잡해진다. 사망 간주된 인물과 자신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인 '지문 조회'는 최후 주소지 관할경찰서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씨 사건을 도운 윤길현 법무법인 율강 변호사는 "서울에서 노숙을 하던 유씨가 과거 살던 부산까지 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류상 사망자로 처리된 이들 상당수가 아무런 행정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사회안전망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씨를 대리해 취소심판을 진행한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주민등록이 말소되면 노숙인 자활 근로도 하지 못해 A씨는 주차장에서 청소를 하고 몇 푼 받는 게 고작이었다"며 "완전한 사각지대에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통상 3개월 이상 소요되는 절차의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준의 인지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이 활동가는 "시설을 통하지 않으면 홀로 서류를 떼는 것조차 쉽지 않은 분들도 있다"고 짚었다.
이렇게 주민등록 밖에 존재하는 시민을 줄이려면, 단순히 실종 기간만 기준으로 사망 간주를 하기보다는 그 요건을 더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숙자의 주민등록을 선제적으로 확인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윤 변호사는 "21세기 한국에서 멀쩡히 산 사람이 사망자로 방치된다는 건 당혹스러운 현실"이라면서 "실종선고 취소 절차도 청구인 편의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