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자국인 인질 3명을 15일(현지시간) 오인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민간인 보호'에 어이없게 실패한 셈이어서 후폭풍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특히 인질들이 백기를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는데도 총격을 가한 것으로 밝혀져 "인질 구출을 위해 가자지구 지상전을 펴는 것"이라고 했던 이스라엘로선 전쟁 수행 명분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이스라엘 사회는 분노로 들끓고 있다. "당장 인질 석방 협상에 나서라"는 요구가 인질 가족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고, 수천 명이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도 열렸다. 실제 이스라엘은 인질 석방을 위해 하마스와의 협상 재개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스라엘의 강경 일변도 군사 작전에 대한 국내외 비판이 빗발치고 있는 만큼, 이번 전쟁에서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지 모른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17일 이스라엘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 하레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IDF의 인질 오인 사살 사건은 15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내 셰자이예에서 발생했다. IDF 소속 병사는 하마스 주요 근거지로 추정되는 셰자이예를 수색하던 중, 남성 3명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 상의를 탈의한 상태였고, 한 명은 흰색 상의를 나뭇가지에 걸친 채 흔들었다. 비무장 상태임을 보이면서 항복 또는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병사는 하마스의 유인 작전이라고 오판, 이들을 사살했다. IDF는 시신 수습·확인을 거쳐 사망자들이 지난 10월 7일 하마스에 납치된 요탐 하임(28), 얄론 샴리즈(26), 사메르 탈랄카(22)임을 확인했다.
비무장 상태 민간인을 공격하는 건 교전 규칙 위반이다. 다니엘 하가리 IDF 수석대변인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해당 지역은 테러리스트(하마스)가 많은 지역"이라고 해명했다.
비극적 사건에 민심은 폭발했다. 16일 텔아비브에선 인질 가족을 비롯한 시위대 수천 명이 모여 이스라엘 정부에 하마스와의 인질 협상을 촉구했다. 남편과 함께 하마스에 붙잡혔다가 먼저 풀려난 이스라엘인 라즈 벤 아미는 "군사 작전만으로는 인질을 살릴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날 전해진 또 다른 인질 인바르 하이만(27)의 사망 소식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고개를 숙였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말했다. "IDF 수석대변인에게 사태 수습을 맡기고 '진짜 책임자'는 뒤에 숨어 있다"는 비판을 고려한 조치로도 풀이됐다.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이 향후 하마스와의 인질 석방·일시 휴전 재개 협상에서 보다 전향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때마침 16일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가 다비드 바르니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나 인질 협상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인질 오인 사살 사건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략을 재고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며 “더 많은 인질 석방을 위한 새로운 교전 중단을 요구하는 동력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이 확산되는 점도 변수다. 15일 미국 CNN방송은 '이스라엘이 개전 후 두 달간 미국 지원을 받는 레바논 정규군을 34차례 이상 공격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분노를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노린 이스라엘군의 오인 공격으로 보이는데, 이스라엘에 '공격 자제'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