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업체 청탁을 받고 대사관 직원에게 부당한 사증(비자) 발급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정재남 전 주몽골대사가 1심에서 유죄 판단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는 1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전 대사에게 벌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정 전 대사는 2018년 11월 몽골 소재 몽골전통복장 제조업체 부사장으로부터 몽골인에 대한 비자 허가 청탁을 받고 주몽골대사관 법무부 소속 비자발급 담당 영사에게 전달했으나, 직업이 불분명하고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허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영사를 불러 비자 심사 결과를 사전 보고하지 않았다고 질책하면서, 비자 신청서를 재접수하고 심사도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영사는 비자신청서를 재접수하게 했고, '원단구매' 사유로 해당 몽골인의 비자발급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검토하라고 했을 뿐, 발급을 지시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나 담당 영사는 상당한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지시하지 않았다면 굳이 재접수하도록 요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비자발급 허가와 관련한 범행은 국가출입국 관리 업무를 교란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수 있다"면서 "주몽골대사관 공관 사무를 총괄하는 대사로서 부정한 청탁을 받아 죄질이 좋지 않고 비난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만 정 전 대사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범행 과정에서 받은 대가가 없는 점 등을 참작해 벌금형에 처했다.
재판부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정 전 대사와 함께 재판을 받아온 홍모씨와 한모씨에게는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의류제조업체 관계자 홍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정 전 대사가 몽골대사로 부임하자, 한국 비자 허가를 원하는 몽골인들에게서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가 인정됐다. 한씨는 변호사가 아닌데도 몽골·러시아 법률가로 홈페이지에 기재해 비자 접수대행업체를 운영하면서 비자발급이 불허된 몽골인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법률상담, 문서작성 사무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두 사람이 각각 챙긴 1,000만 원, 900만 원에는 추징 명령이 내려졌다.
정 전 대사는 2019년 대사관 행사 종료 후 남은 깐풍기 처리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고압적 태도로 직원들을 윽박지르고, 개인물품을 구입하는 데 공관 운영비를 사용했다는 구설에도 휘말린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