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전역에서 사실상 모든 대기업의 강제노동이나 환경훼손 행위 등에 대한 제재가 대폭 강화된다. 이는 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엄격히 적용되는 만큼, EU 회원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U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는 14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유럽의회,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와 '기업의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입법 절차상 최종 관문을 사실상 통과했다는 의미로, 남은 형식적 절차인 이사회와 의회 각각 승인을 거치면 공식 발효된다.
이 지침은 기업들의 생산 공정 전반에 걸쳐 인권과 환경 분야에 대한 실사를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금융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군이 적용 대상이다.
EU 기업의 경우 직원 수가 500명을 넘고, 글로벌 매출액이 1억5,000만 유로(약 2,100억 원) 이상 대기업이 해당된다. 비EU 기업은 지침 발효 3년 뒤부터 적용되며, EU 내에서 3억 유로(약 4,30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린 경우로 확정됐다. 집행위는 추후에 적용 대상인 비EU 기업 목록을 별도 공개할 방침이다.
지침에 따르면 대상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실사 정책을 마련해 인권이나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리 식별하고, 문제 발생 시 시정 조처를 해야 한다.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일종의 실사 보고서 공개도 의무화된다.
특히 대기업은 물론 협력사의 부당 행위 역시 동일하게 규제 대상이 된다. 지침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5%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공공조달 입찰 참여 배제, 수출 전면 금지 등 행정적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구체적인 제재 방식은 EU 지침을 토대로 각 회원국에서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공급망 실사 지침은 기업 또는 협력사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도 특징이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일부 회원국들은 이미 자체 공급망 실사법을 마련해 시행 중인데, EU 차원의 법적 가이드라인 격인 지침이 마련됨에 따라 27개국으로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