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차 소방관 김길영(41)씨는 2년이 다 되도록 소방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 21일 근무하던 인천 영종소방서 용유119안전센터에서 갑자기 쓰러진 그는 뇌경색으로 중증 장애 판정을 받았다. 세 자녀의 아버지였던 그의 가족들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1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열심히 일한 결과가 이거냐"며 "나라가 책임지겠다는 건 말뿐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단호히 말했다. 2019년 이후 공무상 부상·장애·순직 소방공무원은 4,858명에 달한다.
김씨는 결혼 후인 2009년 입직해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으로 13년간 일했다. 그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가장 중요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새내기 소방관 시절부터 남다른 체격을 자랑했다. 별다른 기저질환 없이 이종격투기, 복싱 등 운동을 취미로 삼던 그였다. 위험한 현장에서도 진압에 앞장서는 등 성실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3월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건강했던 그도 현장에 다녀온 뒤엔 고통에 시달렸다. 그의 아내는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사고 현장을 접할 때마다 힘들어했다"며 "평소에는 '뼛조각이 튀어나와서 주워서 가지고 갔다'는 등 무덤덤하게 출동 상황을 얘기하다가도 한 번씩 회식하고 오면 막 울면서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며 스스로를 탓했다"고 전했다. 심리상담도 받아봤지만 형식적으로 느껴져 그만뒀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응급 환자가 많이 발생하면서 근무 강도도 높아졌다. 김씨는 주간 및 야간 3교대로 근무하며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집에서 근무지인 인천까지 왕복 5시간. 그는 집에 돌아와도 깊이 잠들기 어려워하며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곤 했다. 응급 상황에 출동하는 파견 근무도 일상이었다.
지난해 1월 아내는 "이러다 병날까 걱정된다"며 휴직을 권했다. 하지만 김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해 본인까지 쉴 순 없다고 했다. 김씨는 "소방서에 가면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버텼다.
재해에 항상 노출되는 소방관의 경우 일반 공무원보다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윤진하 연세대 의대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체 공무원의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도를 1로 놓을 때 소방관의 발생 위험도는 1.22로 나타났다. 원인은 잦은 교대 근무와 현장 출동, 수면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으로 꼽혔다.
김씨는 쓰러진 후 수 차례의 고비를 넘겨 겨우 뇌 기능의 절반을 회복했다. 그러나 또 다른 후유증이 덮쳤다. 얼굴 일부와 오른팔은 마비됐고, 시야 장애(복시)와 인지 장애도 왔다. 혼자서는 식사조차 어려운 데다가 가족과 대화 한 마디 나누기 쉽지 않다. 깊게 새겨진 트라우마도 일상을 괴롭혔다. 아내는 "병원에서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귀를 막고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한다"며 "우연히 소방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보고 싶지 않다고 몸을 돌린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제적 어려움도 크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홀로 세 자녀를 양육하는 아내는 "매달 병원비로 최소 200만 원이 들어가고 350만 원이 나올 때도 있다"며 "생활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지난 4월 공무원연금공단에 뇌경색으로 공무상 재해보상(공상)을 신청했다. 지난달에야 공상 승인 통보를 받았다. 아내는 "올해 6월 공상추정제가 시행돼 심사가 빨라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중간에 담당자가 바뀌는 등 승인이 늦어졌다"며 "여전히 공상을 입증하고 지원받기 위해 각종 서류를 준비해 제출하고 고군분투하는 건 당사자의 몫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공상 승인을 받아도 당장 눈 앞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언어치료나 보행치료 등 재활비용은 대부분 비급여로 분류돼 전액 지원을 받을 수 없다. 2021년 소방청 의뢰로 보험연구원이 실시한 '소방공무원 정책성 단체보험' 연구용역에 따르면, 공상 승인을 받은 소방관 2,183명 중 본인 부담이 없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16.5%에 불과했다. 소방관 10명 중 8명이 다치고도 본인이 돈을 내고 치료를 받았단 얘기다. 이중 본인 부담 비용으로 200만 원 이상을 부담했다는 응답도 10.2%를 차지했다.
위험한 현장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소방관에 대한 처우와 보상이 개선돼야 한다고 아내는 목소리를 냈다. 김씨의 아내는 지난 2일 제주 서귀포에서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임성철(29) 소방관의 소식에 밤새 아이들 몰래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인천 남동공단에서 화재가 크게 나 남편이 며칠씩 집에 못 들어오고 일했던 때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며 "남 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소방관들은 불이 나면 뛰어들어가고 사람이 쓰러지면 구해야 하는 일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을 구하다 다치면 국가가 나서서 치료해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빈자리는 가족과 이웃이 채우고 있다. 고등학생인 아들과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에게 김씨는 여전히 자랑스러운 영웅이다. 아이들은 "아빠 너무 멋있다" "아빠처럼 멋있는 소방관 되고 싶다" "수많은 생명을 구한 아빠가 자랑스럽다"라며 아빠 곁을 지키고 있다.
안타까운 김씨의 소식에 동사무소 직원들은 김장 김치를 가져왔고, 지인들도 쌀과 방한용품을 챙겨줬다. 김씨의 동료들도 공상 증언 등으로 힘을 불어넣고 있다. "남편이 남을 위해 살았던 게 이런 식으로라도 돌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국가가 외면하는 동안 주변에서 건네는 사랑의 힘이 저희 가족을 살리고 있다고 믿고 버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