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위' 구도로 기운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해 임신중지(낙태)권을 폐기한 데 이어, 이번에는 '먹는 낙태약' 판매 규제에 대한 검토에 착수한다. 내년 11월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중지 문제가 선거판을 흔들 중대 변수로 또다시 전면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13일(현지시간) 임신 10주까지 사용할 수 있는 '먹는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의 판매 문제와 관련한 검토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제5연방항소법원은 지난 8월 미페프리스톤의 사용을 기존 임신 '10주 이내'에서 '7주 이내'로 제한하고, 원격 처방과 우편 배송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법무부와 제약사 댄코 래보라토리는 이에 불복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미페프리스톤은 미소프로스톨과 함께 복용하는 경구용 임신중절약이다. 현재 미국 내 임신중지의 절반가량이 이들 약물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페프리스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00년 사용을 허가한 후 주기적으로 안전성을 인정받았고, 지금은 의사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처방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조만간 심리를 개시할 예정이다. 판결은 늦어도 대선 정국의 한복판인 내년 6월 말쯤엔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CNN방송은 "대법원의 이번 결정에 따라 '보수'로 기울어져 있는 법정에서 임신중지권 폐지에 이어, 다시 한번 임신중지 문제의 명운이 좌우되게 됐다"며 "임신중지 문제가 대선판을 뒤흔들 가능성이 커졌다"고 짚었다.
미국에서 임신중지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첨예한 이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대법관 9명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은 '보수 6 대 진보 3' 구도로 재편됐다. 그리고 조 바이든 행정부 2년 차인 지난해 6월, '보수 대법원'은 헌법상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었다. 미국 사회엔 메가톤급 후폭풍이 일었고, 같은 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여성 표심이 민주당으로 쏠리며 공화당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 전역에서 우리는 전례 없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공격을 목도하고 있다"며 "어떤 여성도 자신에게 필요한 의학적 도움을 받는 게 저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나왔던 제5항소법원 판결과 관련, 장-피에르 대변인은 "FDA의 독립적·과학적 결정을 위협하는 판결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FDA의 결정을 지지하고, 여성의 권리 보호에 앞장설 것"이라며 의회에 임신중지권 보장 입법을 촉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