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사퇴했다. 10월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이후 두 달 만이다. 김 대표는 인요한 혁신위원회와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윤심'을 내세워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이틀 전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다만 김 대표는 혁신위가 요구해온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총선에 다시 나설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급속히 전환할 전망이다. 총선은 이제 4개월 남았다.
김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저는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올렸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이틀간 칩거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김 대표는 "우리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대표인 저의 몫"이라며 "저의 거취 문제로 당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의 결과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 反求諸己)를 인용했다. 그는 "윤재옥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빠르게 안정시켜, 후안무치한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의회 권력을 잡는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저의 견마지로를 다하겠다"며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당의 안정과 총선 승리를 위해 이바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당대표가 아닌 지역구 의원(울산 남구을)으로서의 거취는 못 박지 않았다.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하태경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본인이 (사퇴) 결단을 할 경우에는 울산 출마는 당이 양해를 해주는 타협안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출구전략'을 제안했다. 울산 일부 유권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김 대표의 출마를 촉구했다.
김 대표는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이후에도 사퇴를 거부했다. 대신 임명직 당직자를 교체하며 '김기현 2기 체제'를 꾸렸다. 17%포인트 차이 패배라는 충격적 결과에도 아랑곳없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당 지지율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정부 견제론(51%)'과 여당을 지지하는 '정부 안정론(35%)'의 격차가 역대 최대인 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윤 대통령은 8일 김 대표와 인요한 위원장을 불러 오찬을 함께 했다. 이후 김 대표는 "나는 힘이 빠진 적 없다"며 존재감을 뽐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선 11일 장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혁신위가 요구한 '희생'에 화답하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3·8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지 9개월 만에 조기 하차한 셈이다. 당대표 임기는 2년이다.
당내에는 '김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당 안팎의 '총선 필패론'에 밀렸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와 가까운 초선들은 의원 단체 대화방에서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김 대표 사퇴를 요구한 중진들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천을 받기 위한 구태'라는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김 대표는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기에 앞서 이준석 전 대표와 1시간가량 만났다. 김 대표는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과 관련한 당내 여러 우려 사항을 전달했다"며 "제가 이준석 신당에 참여하는 것 아니냐는 낭설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는 "김 대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이 잘되기 위한 고민의 측면에서 말씀하셨다"고 거들었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한국갤럽 혹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