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외교 선명성보단 정교함 가져야 운신 폭 넓다"

입력
2023.12.13 18:30
24면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인터뷰

편집자주

<정진황의 앵글>은 외교 안보 현안에 대한 주요 인물 인터뷰와 소재를 다룹니다. 안보 현안만큼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는 분야도 없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보고자 합니다.


북한 정찰위성 발사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9·19 군사합의 중 공중 감시 정찰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에 나섰고, 북한은 군사합의에 구속받지 않겠다며 군사분계선의 GP복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재무장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에 기반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분위기 속에 대선 정국에 접어든 미국에서 '트럼프 변수'가 부각되는 등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가 놓이게 됐다. 지난 7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을 만나 군사합의 파기 정국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조 전 원장은 "현 상황과 추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가 운신의 공간을 찾아내는 '전략적 정교함'(strategic sophistication)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군사합의 일부 정지, 명분 우위 확보 못해 아쉬워
합의 파기엔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 제시해야
미국도 전체 무효엔 충돌위험 가중 부담 느낀 듯

-9·19 군사합의 파기와 군사적 긴장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2018년 9·19 군사합의 당시 정치권 일각에선 북방한계선(NLL)이 희미해지고, 서해 5도의 우리 군 포 사격 훈련이 어려워진 서해 완충수역 문제를 더 부각했습니다. 이번 우리 조치는 서해 완충수역을 그대로 둔 채, 공중정찰을 제한한 1조3항만 무효화했습니다. 1조3항에 대한 효력정지에 북한은 예상한 대로 사실상 파기로 받아쳤습니다. 아쉬운 점은 우리가 명분의 우위를 확실히 해두는 것이 중요한 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엄연한 국제 합의임을 감안할 때 우리가 먼저 깬 셈이 됐습니다. 합의는 타협의 산물입니다. 불리하거나 유리한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군사합의 구조를 보면 우리는 해상·육상 접경지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중시했고,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공중정찰·감시 능력 제한을 중시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군사합의 1조1항에는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상황에서 3개월 뒤 평양 남북정상선언과 군사합의가 만들어졌습니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고 했고, 그 후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했습니다. 한미 훈련은 우리가 지난해 하반기에 이미 재개했고 이번에 공중정찰을 재개했으니, 북한으로서는 실익이 없어진 셈이니 반발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또 아쉬운 점은 군사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1월 북한의 무인기 침투를 두고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 거의 일 년이 지난 11월 북한의 3차 정찰위성 발사를 이유로 1조3항 효력을 정지했습니다. 더구나 북한 정찰위성 발사를 이유로 들면서 스페이스X를 이용한 우리의 군사위성 발사 계획을 같은 시기에 발표한 것도 혼란을 주는 대응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가 군사합의 1조3항만 효력정지할 이유가 있을까요.

“2018년 군사합의 3주 뒤 일본 언론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전화해 비행금지 구역 설정 등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국방 당국은 2019년 11월 연례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서 ‘9·19 합의 이행이 한반도의 우발적 충돌 방지에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불만은 있지만 유엔사령부를 통한 정전 관리 책임을 맡은 입장에서 군사합의의 순기능도 보았던 겁니다. SCM 공동성명의 이 문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2021년에도 바뀌지 않았지만 윤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가을 SCM에서는 이 문안이 사라지고 “이종섭 장관은 '북한의 반복적 방사포 사격 등 9·19 합의 위반’에 우려를 표시했다”는 새로운 내용이 들어갔습니다. 양국 장관이 공감했다거나 하는 표현이 없는 걸로 봐서 미국은 동의하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올 11월 SCM 성명에는 9·19 관련 문안이 아예 없어졌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고, 대만해협 긴장도 여전할 때 한반도에서도 충돌 위험이 커지는 것을 미국이 달가워할 리 없어 보입니다.

국익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파기해야 하겠지만 계약이나 합의는 말 그 자체로 무게가 있습니다.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합의 전체를 사실상 파기했지만, 그 효력이 우리한테 자동으로 미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효 선언을 할 때까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나머지 조항의 효력을 어떻게 할지 우리 입장이 애매할 것입니다.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지금도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책 목표를 유지한 채 폐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비행금지구역 효력정지 이유로 대북 감시 정찰 능력 약화와 감시 사각지대를 들었습니다. 최소한의 방어적 조치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기습공격을 현실적 위험으로 봐야 할까요.

“남북은 군사분계선 양쪽에 군사력이 집중돼 선제 또는 기습공격의 이점이 큽니다. 이 때문에 한미연합군은 육상·해상·공중의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하는 데 많이 노력해 왔지만 이번 조치도 그 맥락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다만 우발적 충돌 위험이 높아진 지금 상황으로 보자면 1조3항을 정지시키는 게 최선인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공중정찰을 재개할 때, 북한은 GP복구,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 재무장 등으로 접경지 긴장을 높이면서 압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수위로 대응할 경우 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지겠지요. 2018년 이전 상태로 가는 것보다는 개선 방안을 찾아볼 수도 있었습니다. 한미연합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디지털 자산이나 미국의 위성 정찰 능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었을 것이고, 군사합의에 수정 보완 조항이 있으니 북한과 재협상을 시도하면서 명분을 쌓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미국의 ABM 파기로 극초음속 등 군비경쟁 가속
위안부 합의 방치, 과거사의 도덕적 우위 훼손
장기 이익과 대외 신뢰도 영향 심사숙고해야

-조약, 합의 파기에는 대가가 따르는 걸로 보입니다. 참고할 만한 선례가 있을까요.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시절에 미국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72년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탈퇴한 게 대표적 예입니다. 미소가 요격 미사일 개발을 하지 않기로 합의함으로써 상호확증파괴에 의한 억지력을 유지하고 군비경쟁을 억제하던 게 무너졌습니다. 이후 창은 창대로, 방패는 방패대로 개발경쟁이 붙었습니다. 특히 방패를 뚫기 위해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등 더 강하고 치명적인 공격 미사일이 개발됐습니다. 러시아가 핵 추진 수중 드론과 핵 추진 대륙 간 크루즈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최근 보도가 있는 걸 보면 세계의 전략적 불안정성은 더 커졌습니다.

우리로 보면 문재인 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이 ‘국제 합의를 지키지 않는 나라’로 비난하는 빌미를 제공했고, 과거사 문제에서 우리의 도덕적 우위가 훼손됐습니다. 합의를 파기할 때는 눈앞의 이익도 보지만, 장기적으로 그만한 이익이 있는지, 대외 신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해야 할 일입니다. 정권 교체에 따라 대외정책을 바꾸는 일을 당연시하는 듯합니다만 국제사회가 보면 정권교체는 국내문제일 뿐, 어느 정권이든 그냥 한국 정부로 봅니다."


힘에 의한 평화, 상황 통제 능력 보여줘야
미중대화 유지처럼 대북대화 재개조건 고려
대일관계 개선은 한반도 상황 관리에 중요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의의나 한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이 호전적 발언을 연일 쏟아 내고 있어 정부도 국민을 안심시키려고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는 걸로 보입니다. 정부가 강하게 나가니까 ‘북한에 약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으나 북한이 호전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이 움직여야 할까요. 적대적 대치와 군사력 집중도가 높은 한반도는 안보딜레마가 격렬하게 작동하는 곳입니다. 북한은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에게는 협박과 공격 수단입니다. 우리는 억지를 위해 연합훈련을 하지만, 북한은 전쟁 준비라고 우깁니다. 우리에겐 방어를 위한 조치지만, 상대는 위협으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할 때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능력과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야 합니다."

-북한은 다종의 핵탄두 개발에 이어 군사위성까지 쏘아 올리고 있습니다. 군사 전략적 변화가 있을까요.

“한반도에선 군사적 균형을 찾는 데 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재래식 군비 경쟁과 전략 무기 경쟁이라는 두 차원의 경쟁이 병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재래전력을 한미연합의 재래전력과 핵우산으로 억지하려고 하고, 북한은 핵 개발을 통해 재래전력을 보완하고 미국의 확장억제를 상쇄하려고 합니다.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을 찾으려면 우리가 자체 핵 능력을 확보해 북한의 재래 전력과 핵전력을 억지하거나, 북한이 미국의 확장 억제를 상쇄할 수 있을 만큼 핵 능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둘 다 현실적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불안정한 상황은 상당 기간 계속될 수 밖에 없고, 언제든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하면서도 대화 채널을 유지하듯이, 우리도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유화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군사적 긴장완화는 있었지만 핵개발 억제 등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유화적이라기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했다고 봅니다. 더욱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절대 권력자인 건 분명하지만 그 때문에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급격한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의 폐쇄 체제와 권력에 미칠 수 있는 충격이나 북한이 느끼는 안보 불안 등으로 볼 때 밖에서 보는 만큼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주변국 관계를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 문재인 정부가 대일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한반도 냉전체제 해소나 평화구축은 동북아 정세의 중대한 현상 변경입니다. 한반도 미래에 전략적 이해가 있는 주변국의 이해와 협조를 어떻게든 확보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전 정부가 미국과 중국 관계에서는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만 대일관계 관리가 많이 소홀했습니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방치한 것이 결정적으로 한일관계를 악화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를 진척시키는 데도 큰 부담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치외교, 흑백 논리로 운신 폭 좁힐 우려
거래 중시 트럼프, 심각한 통미봉남 가능성
임기 내 성과 위해 서두르는 경향 지양해야


-윤석열 정부는 가치외교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현 정부가 대미, 대일관계, 특히 한일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잘한 일입니다. 다만, 굳이 ‘가치외교’라는 타이틀을 달 필요가 있을까요.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우리 외교 운신의 폭을 좁히고,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가치는 절대적이고 추상적 개념입니다. 흑백논리를 피할 수 없고, 가치가 다른 쪽을 배제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지난해 하반기 미국과 일본은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한국은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관심을 끈 것은 중국에 관한 내용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 행태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군사적 투명성 강화’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에 대한 우려도 표시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요구사항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양이면 굳이 가치외교라는 말로 오해를 살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도 ‘가치’보다 ‘규칙’이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캠프 데이비드 선언 당시 한미일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가치’라는 용어를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규칙 기반 질서’만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만 ‘가치외교’, ‘가치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한국은 미국 패권이 수립한 규칙 기반 질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국가이고, 이 질서는 우리 국가이익에 부합합니다. 우리는 70년 동안 한미동맹을 통해 이 질서에 참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굳이 ‘가치외교’를 말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더구나 지금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자체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대변혁기입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처벌적 관세 등은 이전 질서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이전까지 열성적으로 추구해온 상호의존성이 무기로 바뀌었습니다."

-차기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당선 시 세계는 물론 우리도 엄청난 격변을 겪게 될 터인데요.

“트럼프가 백악관에 오를 경우 지난번과 달리,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경험 있는 전문가보다 충성파를 기용한다는 예측이 벌써 나오고 있습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리처드 그레널(Richard Grenell) 전 국가정보국장이 거론되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할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당연히 한반도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는 2019년 2월 하노이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욕구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북미대화가 이뤄지면 우리 사회는 심각한 통미봉남 증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한 점은 트럼프는 가치를 강조하지 않을 겁니다. 대변혁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연하고 신축적인 자세입니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 주변에 있는 나라를 자기편에 끌어들이려는 압박이 가중되지만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선명성’이 답은 아니라고 봅니다. 전략적 모호성은 그 자체로서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핵무기의 존재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세안이 미중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으면서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도 거기에 기반합니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은 2017년 사드 사태를 계기로 많이 나왔는데, 그것은 정책의 혼선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수긍하느냐와는 별개로 '우리가 왜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는지'를 중국에 차근차근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최악의 소통실패로 생각합니다.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하다고 하는 쪽도 한미동맹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은 지난 70년 이상 한국 외교의 상수(常數)였고 오랜 기간 축적된 인적, 제도적 네트워크가 촘촘히 짜여 있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양자 회담을 하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시 주석이 페루, 피지, 브루나이 정상을 만난 것으로 보아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몇 년간 중국과 전략적으로 대립각을 세워 온 미국과 일본이 양자 회담을 한 것으로 보아, 전략적 견제도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은 지금 한국이 누구 편이냐를 떠나 한국이라는 나라의 신뢰도를 재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대중, 대일 정책 변화의 폭이 극심합니다. 중국이나 북한은 물론이고 일본마저 큰 양보를 하면서 우리와 관계 개선을 시도할 이유가 있을까요. 전임 정부와 차별화하려고 뒤집고 난 다음, 5년 임기 안에 무언가 다시 성과를 만들려고 서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권력 승계를 제도화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했습니다. 좀 더 소통에 애쓰면 국민이 지지하는 대외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모든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북한이 흉내 낼 수 없는 장점이 있는데도 우리끼리 다투느라 살리지 못하는 건 아쉽습니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37년간 외교 현장에서 일했다. 북미 국장과 한미안보협력대사, 한미방위비협상 정부대표, 외교부 대변인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립외교원장을 지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북한과 미국 중국의 전략적 삼각관계를 분석한 ‘북한 생존의 길을 찾아서’가 있다.




정진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