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과 정부의 역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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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4 04:30
25면

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의 재투표 부결로 결국 지난 8일 폐기됐다. 같은 날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노란봉투법과 대법원의 역할(1)'에서 입법의 공백을 사법부가 해석으로 보충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노동법 분야에서 사법부는 사실상 입법부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노란봉투법의 내용 중 하나인 '사용자개념 확대'에 대해서, 2010년 대법원은 이른바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에는 원청도 '부당노동행위 주체가 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다. 위 법리가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에도 확대 적용될 것인지는 앞으로 대법원 판결을 지켜봐야 한다. 또한, 대법원은 2023년 6월 '손해배상 책임개별화'에 대하여도 개별 조합원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합원별로 책임제한 정도를 개별적으로 달리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노란봉투법과 국회의 역할(2)'에서 국회는 노동시장 변화를 반영해 법을 개정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은 1950년대 들어온 개념이고 당시 근로관계는 대부분 사용자와 근로자가 '명시적, 묵시적 근로계약'을 맺는 단순한 형태였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분화되고, 원·하청 등 계층적이고 다양한 근로형태가 확산되면서 하청근로자는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근로조건에 대해서 (근로계약이 없다는 이유로) 교섭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위헌적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법을 통과시켰지만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개념이 동시에 확대돼 개정 범위가 넓고, 경영계의 노동계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해 결국 폐기수순을 밟게 된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조장법이라는 경영계의 논리가 통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영계의 이러한 불신은 정당한 것인가? '정부의 역할(3)'은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사관계'는 노동계, 경영계, 정부 3주체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권위주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압축적 근대화와 고도성장을 거치며 노동운동과 민주화 투쟁이 연계됐다는 역사적 특징이 있다. 투쟁에 의해 민주화가 쟁취된 것처럼 노동조건도 타협보다는 투쟁을 통해 쟁취된 것이다.

경영계는 노동계의 비타협적인 불법파업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동자 개인에게 수십억 원의 손배 가압류를 단행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손배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를 돕기 위해 노란봉투에 돈을 담아 보내는 성금운동을 벌였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노동자와 사용자는 현실적 힘의 우열관계가 있다. 정부는 중립적 위치에서 노사 간 힘의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경제적 강자인 경영계가 먼저 변하지 않으면 노사관계는 타협적으로 변화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해도 경제적 약자인 하청근로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에 대해 교섭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현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답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하청업체 대표들이 단결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법무법인 (유)세한 파트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