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의 일본 내 조선학교 접촉자 조사 사실이 알려지자 재일동포 사회에선 “냉전시대 사고에서 나온 조치”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재일동포의 한국 입국이나 일본 내 사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1990년 제정된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법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조선학교를 졸업한 재일동포 3세(한국 국적) 사업가는 12일 통화에서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어르신들은 과거 한국 군사정권이 조작한 재일동포 간첩 사건 등을 떠올리며 ‘또 시작됐나’ 하고 불안해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학교에 한국 시민들이 지원하러 오면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나라, 내 고향분들이 우리를 같은 민족 아이들로 봐 주시는구나’ 하며 큰 감명을 받는다”면서 “이런 교류를 빼앗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 통일부는 일본 내 조선학교 구성원들과의 접촉을 문제 삼아 다큐멘터리 '차별' 등을 만든 김지운 영화감독 등에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북한 주민과 접촉할 경우 통일부에 사전 신고 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제대로 된 신고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기독교협의회(NCC) 총간사를 맡고 있는 재일동포 3세(한국 국적) 김성제 목사는 “일본의 재일동포 탄압은 100년 전 간토대학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재외국민을 차별에서 보호해야 할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냉전적 시선으로만 보고 한국 시민과의 교류까지 막는다면 이는 정부로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조선학교는 1945년 해방 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아이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벌인 민족 교육 운동의 결과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조선학교에 장학금과 교과서 등을 보내며 지원한 반면 한국 정부는 외면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학교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도 하게 됐다. 현재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일본 내 한국 학교의 수는 도쿄 1곳 등 겨우 4곳으로, 조선학교(60여 곳)와 격차가 크다.
물론 이념 문제로 조선학교에 비판적인 재일동포도 적지 않다. 한 재일동포 기업가는 “나는 조선학교를 졸업했지만 딸은 한국 학교에 보냈다”며 “한국 학교는 공동체나 민족 교육이 약하고 입시 교육만 해 불만이지만, 그래도 조선학교가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일동포 3세(한국 국적) 사업가는 “한국 거주 국민에게만 한정된 조치라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재일동포 한국 국적자에게도 적용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재일동포의 국적은 2차대전 패전 후 일본이 일본 국적을 빼앗고 부여한 조선적, 1965년 한일 수교 후 취득할 수 있게 된 한국 국적, 일본 귀화자 등 다양하다. 이 사업가는 “이들이 만날 때마다 서로 국적을 확인하고 신고해야 한다면 비즈니스는 물론 아예 생활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학교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와는 상극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측 인사마저 “한국 거주 국민에게 한국 정부가 취한 조치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이 없다”면서도 “재외동포까지 적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사카 코리아타운 시장엔 한국 국적 할머니와 조선적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물건을 파는데 서로 외면하고 지낼 순 없다”는 것이다.
재일동포 역사를 연구하는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 교수는 이번 조치에 대해 “30년 전 법을 통해 지금까지도 남북교류를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일”이라며 “한국 사회와 재일동포 사회도 30년 동안 많은 교류를 이어왔으니 교류협력법과 상위법인 국가보안법등 관련한 법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과거 조선적이란 이유로 학술 발표 목적의 입국이 불허된 적도 있다.
그는 또 “시민단체 몽당연필이나 김지운 감독 등은 남과 북, 재일이란 정체성을 모두 지닌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의 복잡한 정체성과 역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분들이었다”며 “한국 시민들의 재일동포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기회가 박탈되는 것은 한국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