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상 당해도 못 나가"...섬 주민 삶 위협하는 오락가락 뱃길

입력
2023.12.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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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2, 3일 하루 꼴로 운항 통제
백령도 대형 여객선 도입 번번이 무산
백령공항도 2029년에나 문 열어


백령도 주민 한 분이 갑자기 인천 시내에서 돌아가셨는데, 여객선 운항이 3일째 통제돼 고인의 아내와 딸이 섬에서 나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심효신(60) 서해3도 이동권리추진위원장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대청도, 연평도 등 서해5도 뱃길이 툭하면 끊겨 섬 주민들 삶이 위협받고 있다. 기상 문제로 여객선 운항이 수시로 통제되는 데다 선박 점검이나 고장, 선사 폐업 등으로 장기간 배가 뜨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대책 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13일 인천시와 옹진군에 따르면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과 백령도 용기포항을 오가는 고려고속훼리 소속 여객선 코리아프라이드호(1,680톤)와 코리아프린스호(668톤)는 지난 10~12일 사흘 연속 악천후 탓에 뜨지 못했다. 이달 들어 파도나 바람 때문에 여객선 2척 중 1척이라도 뜨지 못해, '부분 통제'된 날이 10일이나 됐다. 2척 다 발이 묶인 '완전 통제'도 5일이나 됐다. 풍랑주의보가 잦은 겨울철에는 2, 3일에 하루 꼴로 결항된다는 게 주민들 얘기다.

애초 백령도를 오가는 배는 고속 여객선 코리아프라이드호와 코리아프린세스호(534톤), 대형 카페리 하모니플라워호(2,071톤) 등 3척이었다. 그러나 차량 선적이 가능한 하모니플라워호가 선령(선박의 나이) 만료(올해 5월)를 6개월 앞두고 지난해 11월 선사 폐업으로 운항을 중단하면서 차량을 실을 수 없는 여객선 2척만 남았다. 코리아프린세스호가 정기 검사를 받느라 10월 3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휴항하고 코리아프라이드호가 고장으로 지난달 10~20일 운항을 멈추면서 한때 프린세스호의 대체 선박으로 투입된 프린스호 1척만 남기도 했다.

지난해 백령도 항로가 완전 통제된 날은 83일(결항률 22.7%)에 이르는데 하모니플라워호가 다니지 않은 올해는 3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연평도 항로도 작년 57일이나 배가 뜨지 못하는 등 다른 섬들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항공편이 없는 서해5도는 뱃길이 끊기면 외부와 단절된다. 생필품이 떨어져 고생하는 것은 물론 은행 서류나 과태료 고지서를 받지 못하는 등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천 시내 병원 예약을 했다가 배가 안 떠 취소하고 진통제로 버티는 것도 일상이 됐다. 지난해 백령도·연평도 항로 여객선 이용객은 43만875명으로, 이 중 37.9%(16만3,643명)가 섬 주민이었다.

옹진군은 백령도 항로에 대형 여객선이 다시 다닐 수 있도록 2019년 9월부터 사업자를 찾고 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그동안 선사에 대한 지원 금액이 10년간 100억 원에서 180억 원으로 늘었으나 사업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새 선박이 아닌 중고선 도입도 가능하도록 하고 사업 지원 방식도 정액 보조금에서 운항 결손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소용없었다. 국토교통부는 80인승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백령공항 건설 사업을 추진 중이나 2025년 착공해 2029년에나 문을 열 예정이다.

섬 주민들은 주민의 이동권이 민간 선사에 담보 잡혀 있는 현실에 답답함을 드러냈다. 심효신 추진위원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선사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직접 재원을 투자해 주민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예산으로 배를 건조하거나 사들여 선사나 특정 단체에 위탁 운영을 맡기는 방안(여객선 공영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옹진군 관계자는 "전국의 주요 여객선사를 방문해 사업 참여를 독려하고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백령공항의 경우 개항을 2년 앞당길 수 있도록 인천시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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