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한국 사회 최대 문제로 부상한 '저출생·고령화'의 책임을 방송계로 돌리고 있다. 정말로 방송계가 인구 위기를 조장하는 것일까.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소속인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당내 원내대책회의에서 "출산을 기피하는 사회 풍조가 사회에 만연한 것이 큰 문제"라면서 "방송사들이 (출산을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기여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른바 '정상 가족'을 꾸리지 않고 '1인 가구'로 행복하게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다룬 '나 혼자 산다(나혼산)' 등의 프로그램이 비혼과 출산 기피를 부추긴다는 것이 서 의원 발언에 깔린 논리다.
지난 10월엔 채널A의 육아 예능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금쪽이)'가 윤석열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질타당했다. 유재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은 "미디어에 결혼·출산에 대한 부정적 메시지가 많다"고 했다. 육아가 때로는 고통스럽고 아이가 언제나 귀여운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금쪽이'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출산율을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 같은 시각은 콘텐츠 소비자들이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판별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무시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미디어 수용자들은 콘텐츠를 자신의 삶·현실과 연결해서 수용한다"면서 "미디어가 'A'를 가리킨다고 사람들이 곧바로 'A'라고 믿고 행동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수용자를 너무 수동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저출생의 핵심 원인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이다. 결혼과 출산이 성별 임금 격차, 여성 경력 단절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여성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 한 출산율은 올라가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저출생이 콘텐츠 탓"이란 분석은 저출생의 진짜 원인을 가린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업성을 좇는 미디어가 대중의 관심과 맞닿아 있는 소재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다"면서 "콘텐츠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일 뿐이므로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게 (저출생 해법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정치권이 현상과 원인을 혼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유난히 공고한 '정상가족의 신화' 속에서는 비혼 남녀, 동거 커플, 동성 커플 등의 출산이 천륜을 어기는 행위로 치부된다. 미디어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신화를 깨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남성과 여성이 혼인으로 결성한 가정에서 태어나야 온전한 아이로 인정하는 정상가족 편견을 깬 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TV 드라마에선 비혼자를 불쌍한 존재로 묘사하고 연인들의 해피엔딩이 오직 결혼인 것처럼 여기는 일이 흔하다.
비혼 캐릭터의 등장 빈도는 늘었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찾지 못한 등장인물이 일시적으로 선택하는 상태'로 비혼이 그려지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예컨대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사랑이라 말해요'의 윤준(성준)은 비혼주의자이지만 마지막 회에 이르러 여자친구에게 "우리도 결혼할까?"라며 프러포즈한다. KBS 주말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 역시 비혼주의자 태경(안재현)이 연두(백진희)와 '계약 결혼'을 하다 사랑에 빠져 '진짜 결혼'이란 엔딩을 맞는다.
김 교수는 "저출생 문제의 진짜 원인은 여러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듯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 문제가 (여성들로 하여금)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루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면서 "미디어는 우리 삶이 얼마나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드러내면서 장기적으로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