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무료입니다~"
5일 오전 9시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 1번 출구 앞. 매서운 추위에 발걸음을 바삐 옮기는 인파 사이로 소시지와 빵 굽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윽고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노점 앞에 하나 둘 줄이 생겼다. 눈에 띄는 건 '청년에게 핫도그를 무료로 나눈다'는 입간판 글귀. "정말 돈을 안 내도 되느냐"며 반신반의하는 손님 물음에 직원들은 "마음껏 드시라"고 안심시켰다.
'슬기네 팡도그'라는 이름이 붙은 포장마차의 주인장은 조슬기(31)씨와 지인 백은지(30)씨다. 조씨는 월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낮 12시까지 매일 청년들에게 핫도그 160개 정도를 나눠 준다. 대가를 지불하지도, 좋은 후기를 남길 필요도 없다. 그저 든든한 한 끼를 채우면 그걸로 족하단다. 청년이 청년을 위해 '무료 나눔'을 한다? 사연을 들어봤다.
요즘 젊은이들은 힘들다. 장기 불황에 취업도 안 돼 걱정인데, 고물가는 얇기만 한 이들의 지갑을 더 얇게 한다. 지난해 기준 청년층(만 15~29세)의 체감 경제고통지수(한국경제인협회)는 25.1.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하루 세 끼는 사치, 두 끼는 과식, 한 끼는 일상"이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먹는 것에서조차 서러울 때가 많다.
조씨도 또래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대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끼니를 거르며 식당 서빙부터 카페, 물류센터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힘겨운 시절 핫도그는 값싸면서 주린 배를 든든히 채워준 고마운 존재였다. 조씨는 "대학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핫도그라는 매개를 통해 청년을 직접 응원하는 자체가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물론 돈 많이 드는 무료 나눔에 도움은 필수였다. 약사 모임 새물약사회와 서부지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가 의기투합했다. 핫도그 하나에 재료비, 인건비 등 2,500원가량의 비용이 들지만, 청년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듬뿍 담았다. 정현선 서부노련 사무차장은 "높은 실업률, 청년 고독사 등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청년들을 도울 '청년희망마차' 사업을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7월 7일 첫발을 뗀 희망마차는 지금껏 1만5,000개의 핫도그로 청년들에게 소중한 한 끼를 제공했다. 대학생, 이직준비생, 백화점 직원, 아이와 함께 온 부부 등이 먹을거리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날 가게를 찾은 대학생 김효빈(20)씨는 "밥 한 번 사먹으려 해도 1만 원이 넘는데, 돈을 아낄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포장마차는 청년들의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손님들은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며 서로 지친 일상을 토로하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이직준비생 문모(30)씨는 "누군가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고민이 없지는 않다. 행정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노점인 탓에 포장마차를 정비하라는 계도 조치를 여러 번 받았다. 언제까지 핫도그를 구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위안을 얻으려 희망마차에 들르는 청년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소시지를 구울 때 육즙이 '팡'하고 터지는 것처럼 지금은 힘들지만 청년들의 인생도 언젠간 '팡' 하고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사회에 청년을 응원하는 곳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청년 조씨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