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받아줄게"... 전세사기 피해자들 또 등치려던 20대 덜미

입력
2023.12.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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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 은닉 재산 찾아 분배" 약속
유명 법무법인 상표 도용, 신뢰 쌓아

'전세사기'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보증금 회수 방법이 있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려 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이 남성은 대형 법무법인의 로고를 도용해 사기를 치려다 덜미를 잡혔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도봉경찰서는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등 혐의로 지난달 9일 손모(23)씨를 입건해 수사 중이다. 본인을 한 캐피털업체 직원으로 포장한 손씨는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낼 방법이 있다"고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을 꾄 뒤 계약서 등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A법무법인의 로고를 무단 도용한 혐의를 받는다.

올해 9월 집주인 B씨의 파산 소식을 들은 서울 방학동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B씨 일가가 소유한 다른 건물의 세입자 박모씨로부터 손씨를 소개받았다. 손씨는 "B씨 친척이 그의 은닉 자산 18억 원을 캐피털사에 보관하고 있다. 해당 캐피털사의 법률대리인인 A법무법인이 사건을 맡아 은닉 자산을 세입자 피해 구제에 쓰도록 하면 된다"고 피해자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제안에 응한 피해자들에게 변호사 선임비 등 수고비 명목으로 1인당 60만~200만 원 정도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씨의 사기 행각은 피해자들이 직접 사실 확인에 나서면서 드러났다. 이들은 차일피일 시간을 끄는 손씨의 태도에 수상함을 느끼다가 A법무법인 등에 문의를 했다. A법무법인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손씨의) 로고 도용을 인지하게 됐다"며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에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고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고 보니 손씨는 캐피털사 직원도 아니었다.

경찰은 손씨가 피해자들에게서 실제 돈을 받았는지를 조사해 추가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죄명을 특정할 단계는 아니나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조사하고 있다"며 "세부 경위를 파악해 절차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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