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맞서지 마라!

입력
2023.12.10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오랜 투자 격언 중 하나가 “연준에 맞서지 말라”이다. 중국에도 비슷한 게 있다. ‘공산당·정부와 싸우지 말라'다. 공산당이 중국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므로, 정부 정책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투자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경고다.

□ 결이 완전히 다른 격언도 있다. 경제학자들이 자신감 넘치는 정치인이나 경제관료들에게 자주 조언하는 말이다. “정부는 시장과 싸우지 말라”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정부가 제시한 정책이 옳고 시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섣불리 시장에 개입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보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집권 초기 권력자들은 부도덕해 보이는 시장을 꺾어 보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정교하게 조율되지 않으면, 큰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오만한 정부에 대한 시장의 복수극이 펼쳐지면 모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 ‘시장의 복수’는 멀리 찾을 필요도 없다. 당장 전 정부의 실패한 부동산 정책이 그랬다. 당시 집권세력은 국민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부동산 투기는 나쁜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투기적 거래를 한 사람들을 모두 혼내주겠다고 나섰다. 취지는 올바른 정책이었지만 국민 개개인의 욕망이 뒤섞인 5,000만 차원의 욕망 방정식을 풀지 못했다. 금융ㆍ부동산 시장은 폭등으로 날뛰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경제를 경제로 보지 않고 기계나 그 부속품으로 보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건만 모두 무시됐다.

□ 윤석열 정부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여전히 국민을 가르치려 들고, 정권 이익에 맞춰 시장에 맞선다. 대통령이 수능 문제에 시비를 건 게 대표적이다. ‘사교육비 줄이라’는 지당한 말씀이지만, 지난 8일 나온 역대급 불수능 결과는 의대정원 증원과 맞물려 내년 재수 열풍을 예고하고 있다. 겨울철인데도 최근 아파트 분양 물량이 집중되는 것도 우려된다. 부동산 PF위기설이 다시 커지면서, 손해를 보더라도 자금을 확보하려는 건설사 움직임이 분주하다. 내년 총선 전까지 막아 보는 게 당국의 목표라는 말도 나온다. 안고 가기 어렵다면, 종기를 키우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