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입력
2023.12.12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할리우드처럼 이제 예술가의 공과 사는 구분해 주고 인정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한 영화평론가가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공개적으로 불륜 사실을 인정했을 때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2017년 3월 홍 감독과 김민희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내 "저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라며 "저희 나름대로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부적절한 관계를 당당하게 밝혔다. 이미 둘의 관계는 영화계에서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음에도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는 어안이 벙벙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가 더 당혹스러웠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베를린·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홍 감독과 김민희가 초청되거나 상을 받아 '국위 선양'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해야 할 때였다. 홍 감독은 이들 영화제로부터 예술성을 인정받았고,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초청되는 '단골손님'이었다. 홍 감독에겐 오래전부터 '국가대표급' '세계 영화계가 인정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당시 영화계 일각에서 "예술과 사생활은 별개"라며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해 주자는 분위기가 만연했던 이유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쉽게 적용되지 않는 얘기다. 도덕성과 예술성을 따로 떼지 않고 동일선상에서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음주운전'과 '학교폭력'이다. 특히 연예계에서 음주운전을 하거나 학교폭력에 가담한 과거가 드러난다면 대부분 퇴출된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 중이던 배우의 하차는 당연하게 여겨진 지 오래다. 섣부른 변명과 핑계를 댔다간 더욱 가혹한 비난과 공격을 받아야 한다. 대중의 사랑으로 스타가 돼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연예인을 향한 잣대는 잔인할 정도로 높다.

운동선수라고 다를까. 제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도덕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야구만 해도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깐깐하게 도덕성을 따지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회는 올해 4월 음주운전·폭행·성범죄 등의 전력이 있는 선수를 대표팀 선발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데이트 폭력'과 '학교폭력' 논란을 일으킨 배지환과 안우진은 대표팀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 배구에서 학교폭력으로 도마에 오른 이재영·다영 자매도 국가대표는 물론 국내 프로팀에서도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있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K리그에서 뛰는 국내외 선수들은 음주운전에 적발되면 소속팀과 계약 해지를 당하기 일쑤다. 올해만 해도 강원FC의 골키퍼 김정호, 수원FC의 라스, FC안양의 조나탄 등은 계약이 해지돼 K리그에서 퇴출됐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대한축구협회의 행보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성관계 불법 촬영'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합류한 황의조를 버젓이 A매치에 출전시킨 건 논란이 될 만하다. 국가대표의 막중한 책무를 무시했고, 국가의 명예 역시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욱 질타를 받는 건 황의조가 A매치에 출전하기 전 많은 언론이 문제제기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서다. 협회는 지난 7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음주운전 전력이 있던 선수를 발탁했다가 논란이 되자 제외하는 촌극을 벌인 바 있다. 이는 대표팀에도 해당 선수에게도 상처가 될 뿐이다. 연예인이나 프로선수는 대중의 사랑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팬들의 지지가 없다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던 평론가의 말은 그래서 틀렸다.

강은영 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