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수상한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겸상 적혈구병 치료법이 미국에서 처음 승인됐다. 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인 10만 명을 비롯,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환자에게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됐다. 다만 치료비가 수십억 원에 달해 소수만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2세 이상의 중증 겸상 적혈구병 환자에게 생명공학회사인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와 크리스퍼 테라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카스제비(Casgevy)' 치료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카스제비는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CRISPR)를 이용한 치료제로, 크리스퍼 기반 치료법이 보건 당국 승인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겸상 적혈구병은 헤모글로빈 유전자 변이 탓에 적혈구 모양이 낫이나 초승달 모양으로 변하는 질병으로, 흑인 유전병 중 하나다. 혈류를 방해해 통증이나 뇌졸중, 장기 부전 등을 유발한다. 미국 내 환자만 10만 명이고, 이 중 약 20%는 중증이다. 흑인 아기 365명 중 1명이 이 질환을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흑인 환자까지 합치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고통을 받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카스제비는 환자의 헤모글로빈이 태아 시절의 정상 헤모글로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환자로부터 채취한 줄기세포에서 관련 유전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병을 치료한다.
FDA는 이날 카스제비 외에, 일반적인 유전자 치료법을 활용한 블루버드 바이오의 '리프제니아(Lyfgenia)' 치료법도 승인했다. 리프제니아는 환자에게 변형된 유전자 사본을 주입해 기형 세포 발생을 억제하는 특정 헤모글로빈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의 치료법이다.
유전자 치료는 기존 치료법인 약물치료나 수혈, 골수이식에 비해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수백만 달러에 달할 만큼 고가의 치료 기법인 탓에 극소수만 이번 FDA 결정의 수혜를 입게 될 전망이다. 현재 유전자 가위 치료에는 220만 달러(약 29억 원), 일반 유전자 치료엔 310만 달러(약 41억 원)의 가격표가 각각 붙은 상태다.
워낙 비용이 비싼 관계로 보험사 동의 절차도 필요하다. 게다가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설도 많지 않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겸상 적혈구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현재 9곳에 불과하다. 또한 많은 의료자원이 동원돼야 하는 탓에 한 의료기관에서 1년에 치료할 수 있는 환자 수는 5∼10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