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136명 수몰 탄광 사고, 일제의 살인이나 다름없었다”

입력
2023.12.08 18:14
8면
1942년 조세이탄광 수몰...총 183명 희생
한국인 유족, '일본 정부 사죄·유골 발굴' 촉구
일본 정부, 발굴 거부...81년 전 진실 묻혀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조선인 136명이 일하다 사고로 수몰된 ‘조세이(長生)탄광’ 희생자 유족들이 8일 일본 정부에 유골 발굴과 봉환을 촉구했다. 일본 야당 의원도 행사에 다수 참석해 유족과 함께 일본 정부에 현장 조사와 유골 발굴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

‘일본 조세이탄광 희생자 한국 유족회’ 양현 회장 등 유족들은 이날 도쿄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주최로 열린 일본 정부와의 의견교환회에 참석했다. 조세이탄광 희생자 조카인 양 회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81년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는 사과와 희생자 유골 발굴 및 봉환을 요구해 온 유족들에게 한마디 답도 없다”고 비판했다.

"조선인 노예처럼 부리고 안전은 무시... 사고 아닌 살인"

조세이탄광 참사는 1942년 2월 3일 혼슈 서부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저 지하 갱도에서 발생했다. 갱도 누수로 시작된 이 수몰 사고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모두 18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희생자 수습과 사고 경위 진상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반환을 요청하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후에도 20년 넘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양 회장은 “증언에 따르면 당시 탄광은 포로수용소를 연상케 할 정도로 노동력 착취와 폭력·감금이 이뤄졌다"며 "탄광주가 생산량 증대에만 급급해 위험한 곳에서도 채굴을 강요하고 갱도를 받치는 버팀목을 제거하는 등 안전 수칙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전했다.

조세이탄광 수몰 희생자 손자인 손봉수 유족회 사무국장은 “일제는 조선인을 동원해 가두고 노예처럼 일을 시키다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사고가 아니라 일본 정부와 탄광주가 공모해 (조선인과 일본인) 183명을 죽인 살인 사건”이라고 비난했다.


일본 야당 의원도 참석... 일본 정부는 조사 요구 거절

주최 단체 공동대표인 이노우에 요코는 “1991년 모임 발족 당시 함께했던 선배들과 한국 유족들이 하나둘 돌아가셔서 시간이 없다”며 “일본 국회의원들이 초당파적으로 협력해 유족의 뜻을 실현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노우에 대표는 사전에 400명이 넘는 일본 국회의원 사무실을 거의 모두 방문해 이날 행사 참석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입헌민주당과 사회민주당 등 일부 야당 의원만 참석했고 집권 자민당 의원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일본 정부 역시 무책임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후생노동성과 외무성 관계자들은 유족의 유골 발굴 개시 요구에 “곤란하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왜 조사나 발굴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분명한 대답을 피했다. 앞서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1일 조세이탄광 유골 발굴 관련 후쿠시마 미즈호 사회민주당 대표 서면 질의에 “유골 매몰 위치와 깊이 등이 분명하지 않아 현시점에는 유골 발굴을 실시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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