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당이 약속했으면 지켜야 한다. 무공천하는 게 맞다. 정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2020년 7월)→(이틀 뒤)”저는 서울·부산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가 없다. 의견과 주장은 다르다."
”저에 대한 정치수사에서 불체포권리를 포기하겠다.“(2023년 6월)→(석 달 뒤)”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검찰독재의 폭주기관차를 멈춰 달라.“
“위성정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못 살려 사과한다. 위성정당방지법을 시작으로 정치개혁 고삐를 죄겠다.”(2021년 12월)→(지난달)"선거에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있겠나.“
대단한 일관성이다. 물론 말 뒤집기의 일관성이다. 측근이니, 모르는 사람이니 따위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큰 정치혁신 현안들에서다. 명분은 같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적폐귀환 결과를 초래한다면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윤 정권의 국가권력 남용과 정치검찰의… 꼼수에 굴복해선 안 된다“, “총선에서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 못 하면 이 폭주와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 말하자면 더 큰 대의를 위한 현실타협론이다.
결과는 어땠나. 서울·부산시장 보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참패(그의 직접 책임은 아니다)했고,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정치는 명분싸움이다. 명분은 무엇보다 선거에서 가장 큰 대중 소구력을 갖는다. 이재명 대표처럼 정치변방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낮은 지지도로 여야가 탄핵에 합세했을 때 총선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것도 그가 끝내 지키려던 명분과 가치 덕분이었다.
이에 반해 이 대표의 대의는 권력의지 실현을 위한 눈앞의 이득에 가깝다. 더 솔직히는 정치적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평소엔 담대한 명분을 주장하다 막상 정치적 이해 앞에 서면 불가피한 현실론으로 표변하는 식이다. 그런 그가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입에 올린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은 4년 전 민주당 주도로 강행처리된 것이다. 민의를 더 충실히 반영하고 양당제의 폐단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를 퇴색시킨 게 위성정당 꼼수였다. 그러므로 위성정당 방지장치만 제대로 만들면 진일보한 선거제가 된다. 이 대표의 언급은 이걸 또다시 뒤집을 수도 있다는 시사다.
이로 인해 민주당은 격렬한 내홍에 빠졌는데도 정작 당사자는 오불관언이다.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새 대표로 가기엔 총선이 너무 임박해서다. 혹 그리된들 계파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당이 엉망으로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체제 그대로 가서 이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면 반대 목소리도 잦아들 것이다. 그래도 명분을 꺾지 않는 원칙주의자들이나 탈당, 신당합류파들로 인한 손실은 위성정당으로 메꾸면 된다. 이 계산이 맞을까?
지난번 1차 체포동의안 부결 뒤 '민주당의 길, 이재명의 선택'을 썼다.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를 벗을 방법은 없으며, 그 체제로는 방탄 외의 운신이 어려워 제대로 야당 역할 하기도 어려우리라고 봤다. 그래선 총선도, 대선도 무망하다고 했다. 9개월이 지나도 상황은 똑같다. 같은 시간이 무한 반복되는 타임루프(Time Loop)에 갇힌 형국이다. 더욱이 이재명식 정치에 대한 저항이 커지면서 민주당은 스스로 쪼그라들 수도 있는 막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당장 급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이 대표의 출구는 하나다. 위성정당 방지책으로 그나마 신뢰를 회복하고 당당하게 총선에 임하는 것이다. 그래도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 윤 정부의 국정운영이나 대통령 지지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혹 멋있게 진다 해도 그건 차기 대선의 든든한 자산이 될 것이다.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