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리려면 나체사진 보내"...이런 '반사회적 계약' 무효 추진

입력
2023.12.07 18:00
금감원-대한법률구조공단 MOU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 사례 선정해
불법대부계약 무효 소송 지원하기로

급전이 필요했던 A씨는 '돈을 빌려주겠다'는 문자광고를 보고 사채업자에게 연락해 560만 원을 빌렸다. 사채업자는 대출 조건으로 휴대폰에 저장된 지인 연락처를 공유할 것을 제시했다. '채무 독촉에 동의한다'는 내용도 차용증에 넣었다. 당장 한 푼이 급했던 A씨는 모두 수용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A씨는 지금까지 980만 원을 갚았지만, 사채업자는 이자가 불었다며 700만 원을 더 요구했다. 상환이 늦어지자 A씨의 가족과 지인, 남편의 지인, 자녀와 자녀 학교 선생님 등 연락이 닿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해 A씨와 관련한 허위사실을 퍼뜨렸고, "죽을 때까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도 일삼았다.

정부가 이런 불법 대부계약에 대한 무효화를 추진한다. A씨와 같은 피해자가 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무료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은 7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9일 "민생을 약탈하는 불법사금융을 처단하고 불법이익을 박탈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

금감원은 민법상 '반사회적 계약'으로 인정될 경우 원금을 포함한 불법 대부계약 자체가 무효일 수 있다고 봤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를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대부계약 자체를 무효화한 판례는 없다.

금감원이 '반사회적 계약'으로 판단하는 사례는 △과도한 폭리 △괴롭힘, 협박, 명예훼손을 포함한 불법 채권추심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불법 계약이다. 20만 원을 빌려주며 일주일 후 38만 원으로 갚게 하는 경우, 액수가 커 보이지는 않지만 연리가 무려 4,693%에 달하는 불법 대출이다. 신체포기각서는 물론, 협박 등 불법 채권추심을 위한 목적으로 채무자 지인의 연락처 일체를 요구, 수집하는 경우도 해당한다.

최근 성행하고 있는 성착취 불법 채권추심도 마찬가지다. 21세 여성 B씨의 경우 30만 원을 빌린 뒤 700만 원 넘게 갚았는데, 사채업자는 "원금 상환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B씨의 나체 사진을 담보로 요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나체 사진 등을 요구하고 수집하는 것 자체로 성착취에 해당하고, 추심 과정에서 사진 합성·유포·협박 등 추가 성착취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어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우선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사례 중 무효 가능성이 높은 불법 계약 10건을 선정해 무효 소송을 지원할 예정이다. 금감원이 모든 소송 비용을 부담하고,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소속 변호사를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하는 방식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의 대규모 조직개편으로 이번에 신설된 민생금융국이 소송 지원을 총괄해 이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악랄한 불법채권 추심, 성착취 추심 등이 연계된 경우 무효화를 주장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번을 시작으로 첫 판례를 이끌어내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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