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우크라 '등에 칼 꽂은' 폴란드...국경 봉쇄 시위 한 달 물류 마비

입력
2023.12.07 21:30
폴란드 운송업자들, 국경 막고 한 달째 시위
"전쟁 때문에 풀어준 입국허가제 재도입" 주장
'공급 부족' 우크라, 군수품·구호품 반입 차질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등에 칼을 꽂았다."

한 달째 이어진 폴란드 트럭 운전사들의 우크라이나 국경 봉쇄 시위를 두고 마르키얀 말스키 폴란드 바르샤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시위로 우크라이나행 일반 물류뿐 아니라 군수품과 구호품 반입도 지연되고 있다. 러시아 침공에 맞서 가장 강력한 동맹을 과시하던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관계마저 끝 모를 전쟁 앞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다.

폴란드 운송업자 "우크라 트럭 입국 허가제 재도입을"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달 6일부터 폴란드 운송업자들은 우크라이나와 접한 국경 검문소 8곳 중 3곳을 막아섰다. 지난주부터 1곳을 더 봉쇄하면서 총 4곳이 차단된 상태다. 지난 1일부터는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슬로바키아의 트럭 운전사들도 시위에 합류했다.

FT에 따르면 국경에는 입국 허가를 기다리는 우크라이나 화물 차량 행렬이 25㎞ 이상 늘어서 있고, 시위대는 군용트럭을 포함해 1시간에 5대만 통과시키고 있다. 날씨마저 영하로 떨어지면서 대기하던 우크라이나 운전사 2명이 숨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시위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비롯했다. 우크라이나의 바닷길과 하늘길이 막히면서 이웃나라 폴란드를 통한 육로가 주요 수송로가 됐다. 유럽연합(EU)은 전시 상황에 놓인 우크라이나의 화물 차량에 입국 허가제를 풀어줬다.

EU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운송업자들은 EU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돼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게 됐다. 폴란드 화물 차량보다 운송비를 낮게 매기자 우크라이나 화물 차량으로 물류가 몰렸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전쟁 전인 2021년 62%였던 폴란드 운송업체의 양국 간 운송시장 점유율은 지난 10월 8%로 급락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38%에서 92%로 크게 늘었다. 폴란드 트럭 운전사들은 입국 허가제를 되돌리지 않는다면 내년 1월 초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전쟁 교착·공급 부족' 시달리는 우크라에 직격타

22개월째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직격타를 맞았다.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 물류는 마비 상태다. 시위로 인한 우크라이나의 무역 손실 추정치는 4억 유로(약 5,702억 원)를 넘는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군수물품의 경우 우크라이나로 들여보내고 있다'는 게 시위대 주장이지만, 우크라이나 측 얘기는 다르다. 군수품뿐 아니라 군수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 구호물자 등의 반입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로이터는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EU의 추가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시기에 이뤄진 이번 시위는 개전 이후 동맹국들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신호라고 FT는 짚었다. 우크라이나 트럭 운전사 페트로 다리추크는 "이번 시위는 우방 관계가 얼마나 빨리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사람들이 우리 전쟁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FT에 말했다.

고대하던 EU 가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친(親)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다음주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지원 관련 안건을 올려선 안 된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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