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우리 국경이 더 급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제동

입력
2023.12.0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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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에 최고 선물” 바이든 압박에도 전원 반대
‘해외 안보 패키지’ 통과 대가 反이민 조치 요구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전쟁 자금을 대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집권 민주당이 마련한 긴급 지원 예산안이 의회에서 보수 야당 공화당의 제동에 걸렸다. 난민이나 마약이 무사 통과하지 못하도록 미국 국경 보안 강화에 사용할 돈부터 책정해야 한다는 게 공화당의 입장이다.

“남부 국경 넘은 이민자는 전부 구금”

미국 연방상원은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지출이 포함된 1,105억 달러(약 146조 원) 규모 안보 패키지 예산안을 투표에 부치지 않기로 했다. 투표 진행 여부를 묻는 ‘절차 표결’ 안건이 찬성 49표, 반대 51표로 부결되면서다. 표결이 이뤄지려면 전체 100명 중 6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해당 예산안에는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용도 자금(약 500억 달러),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 지원용 자금(140억 달러)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10월 20일 백악관이 의회에 보낸 1,050억 달러 규모 패키지 예산안이 뼈대다.

그러나 공화당 상원의원 49명은 당론대로 전원 반대했다. 이들은 자국 남부 멕시코 국경으로 유입되는 이민자 문제를 먼저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우리 국경 보호를 위한 정책 변경이 포함되지 않은 법안은 상원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이민자 가족 구금 △이민 법원 출두 때까지 멕시코 체류 △망명 신청 전 이민자 추방을 위한 대통령 권한 확대 등이 공화당 요구라고 NYT는 전했다.

또 민주당 편으로 분류되는 무소속 버니 샌더스 의원은 민간인 사망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조건 없이 군사 지원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향후 예산안을 다시 발의할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러시아 직접 상대해야 할 수도”

바이든 대통령은 막판까지 공화당을 압박했다. 투표 몇 시간 전 백악관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 중 하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그럴 경우 미군이 러시아군과 싸우는 상황에 직면한다”고 경고했다. 또 "(공화당은) 푸틴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려 한다”며 “역사는 자유의 대의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을 혹독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꾸짖었다.

자금 고갈로 당장 우크라이나가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호소도 병행됐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1억7,500만 달러(약 2,300억 원)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을 한다고 발표하며 “의회가 예산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이번 지원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는 마지막 안보 지원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 성탄 연휴 전 타협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경 관련 중대 타협을 할 용의가 있다”고 전향 가능성을 내비쳤고, 공화당 측 협상을 이끌고 있는 제임스 랭크포드 상원의원도 이를 “민주당이 타협점을 찾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로 해석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미국, 러시아군 4명 전범 기소… 첫 사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공화당의 소극적 태도는 개전 초보다 냉담해진 미국 국내 여론에 상당 부분 편승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관심을 자극할 만한 조처도 필요하다. 이날 미국 법무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중 미국 시민권자를 구타·고문한 러시아인 4명을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한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전범 기소가 이뤄진 것은 국내법이 생긴 뒤 처음이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