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 정부 시절 주택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박상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되자 시장에선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주택 거래와 공급이 꽉 막힌 지금 같은 침체기엔 시장 친화적인 박 후보자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MB 정부 시절 굵직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주도했던 박 후보자는 이번에도 '규제 완화'를 예고한 상황이다.
박 후보자는 최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본인의 정책 구상을 간략히 소개했다. 큰 틀은 '부동산 규제 완화'다. 그는 "지금 시장 상황이 굉장히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상황"이라며 "기본적으로 규제 완화의 입장을 갖고 시장을 대하겠다"고 말했다. 집값·전셋값 안정을 정책 첫 순위로 꼽았고 주택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3기 신도시 조기 착공·비아파트 공급 활성화 같은 정책을 거론했다.
박 후보자는 국토부에서 30여 년 몸담은 정통 관료 출신으로 국토부 내에선 주택 전문가로 손꼽힌다. MB 정부 시절인 2010년 주택 정책을 총괄하는 주택토지실장으로 임명돼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당시 MB 정부의 화두는 시장 연착륙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강력한 투기 억제책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수도권 아파트값이 45% 뛰었는데, 금융위기 충격으로 갑자기 거래가 급감하고 미분양이 급증하는 등 주택시장이 크게 출렁였기 때문이다. 집값 하락으로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못 내주는 깡통주택·역전세 문제가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과 시장 상황이 거의 비슷했던 셈이다.
MB 정부가 시장 연착륙을 위해 꺼낸 카드는 규제 완화였다. 박 후보자는 2011년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투기과열지구 해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12·7 주택시장 정상화 대책을 낸 데 이어 이듬해 5월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로 거의 모든 규제를 걷어냈다.
2012년 5·10 대책 이후 박 후보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거래를 늘리려면 규제를 풀 게 아니라 집값이 더 내려가게 내버려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집값이 일시에 무너지면 금융기관이 돈줄을 막는 등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아 기본적으로 집값 하락 정책을 쓰기 어렵고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이어 "정부 역할은 집값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라며 "집을 사려는 사람이나 집을 공급하는 건설사나 집값이 안정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관 후보자가 된 뒤 집값·전셋값 안정을 정책 첫 순위로 꼽은 것도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선 추가 규제 완화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한다.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를 강조했지만 상당수는 국회에 막혀 흐지부지된 상태다. 규제지역 내 취득세 중과 배제나 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양도세 중과 배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세금 규제는 현재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는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 4곳만 적용된다. 이 때문에 박 후보자가 거래 활성화를 위해 마지막 남은 규제지역 4곳을 해제할지 관심이 쏠린다.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정책에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현재 거래가 급감하고 인허가된 현장이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는 등 시장 상황이 비정상이라 이를 정상화시키는 게 분명 필요하다"며 "다만 규제지역은 필요성이 있어 유지한 만큼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