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저자의 자유분방한 세상 뒤집어 보기

입력
2023.12.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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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 실버스타인 '폴링 업'

"사람들 말이 당근이 눈에 좋대. 시력이 좋아질 거라고 장담을 하는 거야. 하지만 웬걸 지난밤보다 더 안 보이는 거 있지. 뭐야, 내가 뭔가 잘못 사용해서 그런 거야?"

푸념하는 듯한 짧은 글 위로 낙서처럼 대충 그린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양쪽 눈두덩이엔 당근이 올려져 있다. 눈에 좋다는 당근을 먹는대신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효능을 기대하는 엉뚱한 발상이다.

'폴링 업'은 헌신과 희생을 그린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작가 셸 실버스타인(1930~1999)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실버스타인은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시인, 음악가로 폭넓게 활동했다. 책은 시처럼 보이기도 하는 짧은 글과 크로키 형식의 삽화로 인간의 삶과 현대 문명을 바라보는 작가의 기발한 시선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1996년 초판에 12편의 미공개 유작을 더한 2015년 특별판의 번역 신간이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Fall Down)는 상식을 뒤집고 '위로 떨어진다'는 의미로 '폴링 업(Falling Up)'이라고 붙인 제목은 책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동심 가득한 이야기도 있지만 인생의 아이러니를 떠올리게 하는 글과 그림도 많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창적 시선은 글과 그림의 유기적 구성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책장의 지시를 따라 얼굴을 잔뜩 찌푸린 '시무룩씨'가 그려진 페이지를 뒤집어 보면 "뭘 기대한 거죠?"라는 글과 함께 변함 없는 우울한 얼굴을 보게 된다.

"실버스타인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나무에 그네를 걸고 타던 장난꾸러기 소년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옮긴이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저자의 재치와 풍자가 돋보이는 책이다.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