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장준하(1918~1975) 선생이 창간한 월간종합교양지 '사상계'를 발행했던 곳임을 알리는 '사상계 터' 동판이 감쪽같이 사라졌던 이유는 올 4월 서울시의 수도관 공사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가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해 설치했던 기념 동판을 서울시 스스로 없애고도, 시민이 제보할 때 까지 8개월 동안 까마득히 몰랐던 셈이다. 시는 여러 재발 방지책을 뒤늦게 내놨다.
'사상계 터' 동판 유실 경위를 조사한 서울시 인권담당관 관계자는 7일 본보에 "종로구 일대의 수돗물 공급과 시설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중부수도사업소로부터 '4월 11일 (동판이 설치됐던) 종각역 4번 출구 쪽에 매설된 노후관 교체 공사를 할 당시 도로와 보도를 굴착하면서 '사상계 터' 동판이 없어진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부수도사업소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산하 8개 사업소 중 하나로, 성북·용산·중·종로구를 관할한다.
당초 시는 동판이 뜯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점을 근거로 보도블록 교체 공사를 원인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곳을 관할하는 종로구청으로부터 "올해 종각역 4번 출구 일대에서 보도블록 공사를 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아 지하 공사로 인한 유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부수도사업소에 문의했다. 사업소 측은 처음에는 "동판 유실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가 "노후관 교체 공사 전후 사진을 비교대조해 확인해달라"는 시의 요청을 받고 재차 확인해 본 뒤 경위가 파악됐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다만 고의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동판에 설치·소유 기관이나 연락처도 표기되지 않아, 사업소 직원들이 공사 도중 발견한 동판을 돌려주고 싶어도 어느 기관에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알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짐작돼서다.
시 관계자는 "사업소 측이 (부주의로 인해 손해를 끼친 만큼) 미안해하며 동판 비용을 배상하겠다는 입장까지 전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시의회에서 심의 중인 예산안에 유실 동판 재제작 및 재설치 비용도 포함돼 있어 동판 비용 배상은 필요 없는 상황이다. 시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61개의 바닥동판을 설치했는데, 8개가 유실됐다. 그중 전태일 열사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판 2개만 재설치했는데, 내년 예산을 확보하면 사상계 터 동판을 비롯한 나머지 6개 동판도 순차적으로 다시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동판 분실이 잦고, 8년간 동판 현황 전수조사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사후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에 시는 재발방지책도 내놨다. 시 관계자는 "동판에 서울시가 제작 설치한 것을 명기하고 공사할 때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처도 병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각 구청과 상수도사업소에도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시 도로과에서 매년 초 보도블록 공사 계획과 공사 현황을 취합하면 그 목록을 전달받고, 내년부터는 매년 61개 동판 전수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