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공군 역외훈련과 대만문제

입력
2023.12.06 17:3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전쟁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막판 공략을 차단하는 변수가 됐다. 중국 공산당은 치열한 내전 끝에 대륙을 장악하고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하지만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패전에도 불구하고 완전 붕괴하지 않은 채 대만으로 거점을 옮긴 상태였다. 이에 신생 중국은 “1950년의 가장 중요한 전투임무는 대만 등을 해방시키는 것”이라며 완전한 중국 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1950년 6월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중국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 대만을 포기한 채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의용군) 사상자 수는 마오쩌둥 주석의 아들을 포함해 약 60만 명에 달했다. 당시 중국군의 막대한 희생을 바탕으로 북한과 중국은 ‘혈맹’이 됐고, 1961년 체결된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 따라 체약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하거나 개전상태가 되면 상대방도 즉각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키로 했다. 요컨대 한국전쟁이 북한과 중국을 혈맹이자 공산권 내에서도 유례가 드문 강력한 군사동맹으로 묶은 셈이다.

▦ 한편 한국과 미국은 이보다 8년 앞선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역시 혈맹 수준의 군사동맹을 구축했다. 상호 군사원조는 물론, 미군의 한국 주둔까지 양허하는 수준이다. 이 조약에 따라 한국에 배치된 주한미군은 전략적으론 북한 침공 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한미, 북중 간 강력한 군사동맹체제는 근년 들어 대만 문제가 미중 대립의 주요 축으로 부상하면서 한반도 안보에 새로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 알려진 대로,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이래 해외 주둔군에 ‘신속기동군’ 개념을 도입해 유사시 주둔지뿐만 아니라, 해당 광역권역 내 전장에 이동 투입하는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만에 하나 중국이 대만을 무력침공하면 주한미군 전력을 현지에 투입하는 식이다. 문제는 그 경우, 중국과 동맹인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후방기지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주한미공군이 싱가포르까지 날아가 현지 공군과 연합작전을 벌였다는 소식에 잠재된 한반도 안보 위험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