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르완다와 난민 관련 조약을 5일(현지시간) 체결했다. "영국에 입국한 난민을 르완다로 보내 망명 신청을 하게 하고 이들이 르완다 바깥으로 추방되지 않도록 감시·관리를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난민 망명 절차를 르완다에 맡기겠다"는 영국 정부의 방침에 대법원이 위법 판단을 내린 데 따른 조치다. "르완다로 망명 신청자를 보내면 추방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대법원이 위법 판단의 근거로 들자 이를 우회하려는 게 조약의 취지다. 그러나 "망명 신청자를 다른 나라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국제인권법을 무시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6일 영국 BBC방송, 로이터통신 등을 종합하면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내무부 장관과 빈센트 비루타 르완다 외무부 장관은 전날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43쪽짜리 난민 관련 조약에 서명했다.
지난해 4월 양국이 체결한 업무협약(MOU)을 조약으로 격상하면서 법적 구속력을 부여했다. MOU는 '영국에 입국한 망명 신청자를 6,400㎞ 떨어진 르완다로 보내고 르완다 정부가 이들에 대한 망명 심사를 진행한다. 영국은 그 대가로 최소 1억4,000만 파운드(약 2,315억 원)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조약에는 새로운 내용도 담겼다. △독립기관인 모니터링위원회를 설치해 망명 처리 과정에서의 문제를 감시·관리하도록 한다는 내용 등이다. 클레벌리 장관은 "르완다는 난민 지원에 관심이 깊은 안전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조약은 지난달 15일 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린 지 3주 만에 속전속결로 체결됐다. 당시 로버트 리드 대법원장은 "르완다로 이송된 망명 신청자들이 본국 등으로 강제 송환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강제 송환될 위험만 제거하면 르완다로 송환을 해도 된다는 뜻"이라고 곡해하며 조약 마련에 착수했다.
그러나 위법 소지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유럽인권재판소 등은 망명 신청자를 외국에 떠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하지 않은 국가'로 내모는 것을 금지한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르완다 정부는 2020~2022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출신 난민의 망명 신청을 모조리 기각했다. 그러나 수낵 총리는 "국내법 체계나 국제협약 때문에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없다면 국내법을 바꾸고 국제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확인했다.
수낵 총리의 강행은 '불법 이민을 해결했다'는 성과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내년 총선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수낵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의 지지층이 최근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개혁 UK'로 넘어가는 조짐을 보이자 더 조급해졌다. 정부는 4일 '숙련 노동자 체류 조건 강화' 등 합법 이민 문턱을 높이는 대책도 대거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