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예테보리 도서전에 갔을 때 관람객이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한 관람객은 '도서전에서 앞으로 읽을 책을 정하지 않으면 내년의 정신적 생활을 해나갈 수 없다'더군요."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예심 도중 김지은 심사위원의 이야기가 가슴에 콕 박혔습니다. 겉모습을 치장하느라 근력 운동을 하고 비싼 옷을 사면서도 정작 정신을 가꾸는 마지막 노력은 언제였을까요. 아득한 기분이 들면서 말이에요.
물질숭배가 만연한 사회에서 '정신적 생활'을 간과한 현대인의 삶은 그야말로 '도파민(쾌락과 고통을 주관하는 신경물질) 범벅'입니다. 틈만 나면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짧은 영상을 보고, '마라맛' '탕후루' 같은 자극적인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즉각 해소하려 들죠. 캐주얼한 데이트 상대를 여럿 만나봐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책 '도파민네이션'은 이 같은 현대인의 일상이 도파민 중독이라 정의해요.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중독의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즉각적 쾌락은 궁극적 행복이 아니"라면서 모든 종류의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으로 '고통 직면하기'를 강조합니다.
어쩌면 독서야말로 도파민 시대의 해독행위가 아닐까요. 북튜버 김겨울 작가는 책 '겨울의 언어'에서 책만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가장 깊은 수준의 경청'을 꼽아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오랜 기간 몰입해서 듣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에서요. 책은 쇼츠나 릴스처럼 곧바로 재미를 주지도 않아요. 가끔은 복잡한 문장과 각주를 오가며 머리를 싸매기도 하죠. 그러나 독파 후 찾아오는 성취감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의 정신적 생활을 준비하는 연말, 책을 통해 고통에 직면해보는 건 어떨까요. 도파민이 꾸며낸 가짜 행복에서 벗어나 진짜 행복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