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고의적 성능저하' 사건 2심은 소비자가 이겼다

입력
2023.12.0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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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책임 없다"는 1심 결론 뒤집혀
2심 "성능 제한 충분히 설명해줬어야"

애플이 아이폰 소프트웨어(iOS)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성능 저하를 고지하지 않은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 침해'로 볼 수 있어 애플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2심 판결이 나왔다. 1심은 애플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지만, 항소심은 '업데이트 선택권'을 강조했다.

6일 서울고법 민사12-3부(부장 박형준 윤종구 권순형)는 아이폰 사용자 이모씨 등 7명이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1인당 2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애플은 2017년 아이폰6 등 구형 아이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의 성능을 제한하는 기능이 탑재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했다. 구형 아이폰의 갑작스러운 '전원 꺼짐'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업데이트 이후 애플리케이션(앱) 실행 시간이 느려지는 등 아이폰 성능이 하락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애플도 2018년 업데이트로 인한 성능 저하를 인정했다. 그러자 이씨 등 6만3,700여명의 아이폰 사용자들은 같은 해 3월 소송에 나섰다.

1심 법원은 올해 2월 "업데이트가 반드시 사용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 선고 이후에는 원고 대부분이 항소를 포기해, 이씨 등 7명만 소송을 이어갔다.

이번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애플이 업데이트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은 건 소비자의 선택권 제한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사용자들은 업데이트가 성능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전원 꺼짐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더라도 애플은 사용자들에게 업데이트 설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아이폰의 CPU·GPU 성능이 일부 제한된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을 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자료(정신적 피해배상금) 7만 원을 책정했다. "애플코리아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여한 증거가 없다"며 배상급 지급 의무는 애플 본사에만 부과했다.

원고 측은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미법계에서 주로 쓰이는 디스커버리는 재판에 앞서 재판 당사자가 소송 관련 문서 등을 확보하고 이를 서로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정리하는 제도다. 디스커버리 제도 하에서 원고와 피고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 등에 무조건 응해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상대방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고 패소할 가능성이 커진다. 원고 측 법률대리인 김주영 변호사는 선고 직후 취재진을 만나 "원고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한국 사법체계에서, 모든 증거를 다 가진 애플이 파렴치하게 소송을 진행했다"며 "진실이 이기는 게 아니라 증거를 가진 쪽이 이기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코리아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애플은 고객의 제품 업그레이드를 유도할 목적으로 제품 사용 경험을 의도적으로 저하시키거나 제품의 수명을 단축시킨 적이 결코 없다"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객이 아이폰을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박준규 기자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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