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10월부터 새로 입국하는 고용허가제(E-9) 이주노동자에게 '권역 내 이동제한'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해 이주인권단체들이 "고용허가제 역사상 유례없는 심각한 개악이며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은 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사업장 변경 지역제한 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인력을 못 구한 사업장이 정부 허가를 받아 외국인 비숙련 인력을 고용하는 제도로 2004년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는 빈 일자리 문제, 생산인구 감소 등을 이유로 내년도 고용허가 인원을 역대 최대인 16만5,000명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예고했다.
그런 와중에 '지역 소멸' '지방 일손 부족'을 이유로, 올해 10월 19일부터 신규 모집돼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특정 권역에서만 사업장(직장) 변경이 가능하게 제도를 바꿨다. 전국을 5개 권역(수도권, 경남권, 경북·강원권, 전라·제주권, 충청권)으로 나누고, 이를테면 충청권 직장을 얻어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직장을 옮기더라도 충청권을 벗어날 수 없게끔 한 것이다.
단체들은 "기존에도 사업주 동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지역 제한까지 하겠다는 개악"이라며 "직장 변경 및 선택의 자유 침해에 더해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침해하겠다는 것은 고용허가제 시행 20년 동안 유례없는 매우 심각한 개악"이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가 힘들다, 착취와 차별이 심각하다, (일터에서) 죽고 있다,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하면 이주노동자가 본국보다 몇 배 더 임금 받으니 보상이 됐다고 한다"며 "그러나 노동자 인권, 노동권, 생존권을 돈으로 비교하면 안 된다. 이주노동자 노동력만 필요로 하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말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은 "지방 불균형으로 인해 지방에서 인력을 못 구하는 문제를 이주노동자로 손쉽게 해결하려고 하면서, 그 이주노동자조차 떠날까 봐 지역을 못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은 명확한 강제노동"이라며 "정부는 지방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해법이라고 자화자찬할지 모르지만, 이 정책 시행이 길어질수록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사업장 변경 제한 강화는 한국이 가입한 국제협약인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제5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29호 강제노동금지 협약' 등에 모두 위배되는 조치라면서, 이날 인권위에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