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근로자 50인 미만 중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하자 노동계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중소기업에 법 제정 이후 3년의 준비 시간이 있었음에도 중처법 시행을 다시 한번 미루는 것은 '법안 무력화 시도'라는 것이다.
한국노총 조합원 등 300여 명은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앞에서 '노조법 2·3조 거부권 행사 규탄 및 중처법 50인 미만 적용유예 연장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3년을 유예한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이 연기되면 준비한 기업만 바보 만드는 꼴"이라며 "결국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법 제정으로 어렵게 확대된 안전투자와 인식 전환은 공염불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1년 1월 8일 제정된 중처법은 사망 사고 등 중대 산재 발생 시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게 골자다. 통과 당시 산업 현장의 준비 미비를 이유로 시행을 1년여 뒤인 2022년 1월 27일로 늦췄고,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에는 2년을 추가로 미뤄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정은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시기를 2026년 1월 27일로 미루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시행유예는 곧 개악이며, 정부와 사용자가 책임지고 부담해야 하는 안전비용을 노동자 목숨을 담보로 챙겨가겠다는 악랄한 시도"라고 날을 세웠다. 한국노총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노조법2·3조)에 대해서도 "틈만 나면 법치주의를 외친 정부가 사법부와 입법부의 판단은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사용자 단체 입장만 조건 없이 수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오후 국회 앞에서 '중처법 개악 중단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적용 유예를 추진하는 당정과 조건부 승인 의사를 내비친 더불어민주당 모두를 규탄했다.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중처법은) 국민 모두가 염원해 만든 최소한의 법이었는데, 이를 국회에서 또 무력화하려고 한다"며 "대통령과 국회는 노동자들을 한낱 부품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손덕헌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노동자의 생명과 죽음은 대기업과 중소영세사업장이 다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이날부터 국회 회기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내년 1월까지 국회 앞에서 농성할 계획이다. 중처법 유예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단계로 넘어갈 경우 국회의원과 민주당 당대표 등 국회를 상대로 직접적 항의 행동도 나서겠다고 이들은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