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자신의 ‘한일 경제협력체’ 구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한국과 일본이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할 경우 시너지 효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수백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며, 관광 비자도 합치자고 제안했다.
최 회장은 이날 미국 수도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州) 미들버그 한 리조트에서 SK 최종현학술원이 주최한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Trans-Pacific Dialogue·TPD)’ 포럼의 개회사를 한 뒤 한국 언론 워싱턴 특파원단과 따로 만나 한일이 어떤 식으로 경제 협력을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그는 지난달 30일 최종현학술원과 일본 도쿄대가 함께 개최한 국제 학술 대회 ‘도쿄포럼’에서 “한국과 일본이 경제협력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일단 한일이 경제협력체를 구성하면 가장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로 ‘에너지’를 꼽았다. 그는 “양국 모두 에너지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에 속하는데, 두 나라가 통합하는 형태로 공동 구매부터 사용까지 하게 되면 1년간 프로그램 몇 개만 돌려도 단언컨대 수백조 (원)까지 바라볼 수 있는 퍼텐셜(잠재력)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관광업은 최 회장이 보기에 당장 협력이 가능한 분야다. 그는 “제3국 투어리스트(관광객)가 지금은 일본과 한국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는데, (이를 합쳐) 이들이 일본 관광 왔다 한국에 들르고 한국 관광 왔다 일본에 들를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양쪽 다 후회할 일이 별로 없다”며 “시너지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힘을 합쳐야 한일이 상생 가능하다고도 역설했다.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경쟁자로 쳐다보는 경향이 있는데, 솔직히 지금은 우리 말고도 경쟁자가 많다”며 “제조업 관련 데이터를 공유하면 (양국 모두) 잠재력뿐 아니라 규모도 커지고, 그러면 비용이 줄어 파괴력이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일 경제협력체는 유럽연합(EU)의 뒤를 따르면 좋겠다는 게 최 회장의 바람이다. 앞서 그는 개회사에서 “프랑스와 독일 간 철강·석탄 경제연합으로 출발한 EU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며 “한일이 경제연합을 구성한다면 에너지, 반도체, 배터리 등에서 많은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파원단과의 약식 간담회에서 공개된 것은 이 구상의 현실화 방안이었다. 최 회장은 청년들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젊은 친구들이 편견이 훨씬 더 적다 보니까 벤처(기업) 인큐베이션(배양)을 함께 진전시키도록 유도한다면 그런 활동들 속에서 규칙 개정이나 제도 변경을 요구하는 제안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최 회장은 연구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한일 간 과거사 등)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낼 방법이 별로 없고, 제안을 했다고 하루아침에 이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학계가 먼저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그게 충분해지면 파일럿 프로젝트가 뒤따르게 될 테고 그게 우리 경제에 좋다고 판명되면 사람들 생각도 변하지 않겠느냐”고 낙관했다.
최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연말 그룹 내부 인사와 관련해 “젊은 경영자한테 기회를 줘야 하는 때가 필요하다”며 “변화는 항상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회장단 교체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서는 “떨어졌으니까, 졌으니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습하고 경험을 얻은 셈”이라며 “다음에는 더 진전된 형태의 민관 협동을 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