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문 연 사우디 극장

입력
2023.12.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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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 사우디아라비아의 변신

미국-러시아에 이은 세계 3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2016년 4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기후 위기에 따른 화석에너지 감축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국가프로젝트로, 금융과 의료보건과 함께 문화산업 육성도 포함됐다. 1980년대 이슬람 원리주의운동과 더불어 구축된 반(反)서구 문화장벽을 대폭 낮추겠다는 것.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극단주의 배격’과 ‘현대적 이슬람 국가 재건’을 기치로 걸었다.

2017년 12월 11일, 사우디 정부는 상업 영화관 허용 및 영화산업 육성 방침을 천명하며 “2030년까지 300여 개 극장에 2,000여 개 상영관을 갖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넉 달 만인 2018년 4월, 종교-교육용 공공 극장 한 곳을 뺀 모든 극장을 폐쇄한 1983년 이래 처음, 620석 규모의 상업 극장이 수도 리야드 킹 압둘라 금융지구에 문을 열었다. 처음 상영된 영화는 마블스튜디오가 제작하고 월트 디즈니가 배급한 미국 슈퍼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였고, 다음 영화 역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였다.

오락-엔터테인먼트 산업 불모지나 다름없던 사우디는, 영화뿐 아니라 홍해 연안에 건설 중인 대규모 리조트와 테마파크 등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관광수지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극장 허용 6년 만인 현재 사우디에는 6만4,000여 석을 갖춘 69개 영화관이 운영되고 있다. 사우디 정부 산하 시청각미디어위원회는 2018년 이래 사우디 영화시장이 약 1억4,3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올 2분기 성장률이 28%였다고 발표했다.

전제적 통치자로 반정부 성향 언론인(자말 카슈끄지) 암살 등 여러 인권 범죄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는 무함마드이지만,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던 종교경찰부를 축소하고 여성 운전면허 취득을 허용하는 등 일련의 실용-개혁 조치로 사우디를 세속-근대화해 온 것도 그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