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연구진 "탄소포집 의존도 높을수록 경제적 손실 크다"

입력
2023.12.04 17:40
탄소포집 의존도별 기후시나리오 비교 결과
탄소포집 의존도 높을수록 
화석연료 사용기간 연장되는 역효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이산화탄소포집·저장(CCS)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경제적 손실이 클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에 탄소포집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과도한 의존은 비효율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옥스퍼드대 스미스 기업과 환경 연구소(SSEE)는 4일 CCS 의존도에 따른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경제성을 비교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가 제공하는 기후변화 대응경로 데이터베이스에서, 2060년 이전에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100년에 파리협정 목표대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한 것만 골라냈다. IIASA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올해 3월 발간한 제6차 종합평가보고서(AR6)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술과 사회발전 경로를 가정한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50%를 CCS로 감축하는 경우 △배출량의 10%만 CCS로 감축하는 경우 등을 골라 예상 비용을 비교했다. 그 결과 CCS 의존도가 높은 시나리오의 경우, 국제사회가 탄소중립 달성 시한으로 합의한 2050년까지 총 30조 달러(약 3경9,144조 원)의 비용이 추가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연간 약 1조 달러(약 1,304조 원)가 더 드는 셈이다.

CCS 의존도가 클수록 비용이 높은 이유는 화석연료 사용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41개 CCS 시설 중 29개가 원유회수증진1에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랍에미리트(UAE)나 미국 등 산유국은 석탄화력발전소에 CCS를 설치해 탄소를 포집하되 발전소 운영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 자체가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감축기술 설치 비용만 더 들게 된다는 게 연구진의 지적이다.

CCS 설비의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느린 것도 문제다. 연구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포집·저장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연간 49메가톤(1메가톤=100만 톤)으로 지난 10년간 2배가량 성장했다. 만약 전 세계가 배출량 절반을 CCS로 감축하는 경로를 따르려면 2050년까지 연간 포집가능량이 15기가~26기가톤(1기가톤=10억 톤)으로 늘어야 하는데 이는 300~500배의 기술 성장을 필요로 한다. 의존도가 낮은 시나리오를 고려해도 기술은 향후 20여 년간 50배 성장해야 한다.

루퍼트 웨이 SSEE 연구원은 “지난 40년간의 CCS 비용을 포괄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 분야에서는 수십 년간 기술 학습을 통한 비용 하락이 일어나지 않았다"며 "CCS 비용이 태양광이나 배터리 기술과 비슷하게 가격이 하락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CCS 의존도가 낮은 시나리오의 경우 대응 초반부터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에너지 효율 개선 등 보다 저렴한 기술 활용이 이뤄지면서 비용이 크게 줄어들 거란 분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력생산비용 전망에 따르면 이미 2020년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국 재생에너지 균등화발전비용(LCOE)2은 석탄, 가스 등 화력발전은 물론 원전보다도 저렴하다.

연구진은 “CCS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탄소중립 경로가 반드시 더 싸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철강 등 온실가스 감축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일부 산업에는 제한적으로 탄소포집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리처드 블랙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그랜덤연구소 연구원은 “소수 산업과 마이너스 배출을 위해 CCS가 필요할 수 있으나 이를 화석연료 사용의 보상 수단으로 보는 건 경제적으로 무지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1 원유회수증진
유전이나 가스전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밑바닥에 남은 원유를 끌어올리는 방식.
2 균등화발전비용(LCOE)
발전소 건설부터 폐기까지 비용을 합한 발전 단가.
신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