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거물 정치인들이 잇따라 마이크를 잡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직격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를 둘러싼 불만 때문이다. 앞서 이 대표가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를 시사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전 총리에 이어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까지 전면에 나섰다. 이 대표의 대선 공약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키라며 이 대표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손 상임고문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가 합의해 연동형을 병립형으로 회귀시키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이는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공고화하고 정치적 대결 구조를 심화시키는 커다란 후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적 안정을 위해선 다당제를 통한 연합정치 속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이 최선의 과제"라며 여야가 모두 위성정당 방지법 제정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손 상임고문은 앞서 2018년 12월 열흘간 단식투쟁 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관철시켰다.
더불어 이 대표 체제를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손 상임고문은 이 대표를 겨냥해 "당 전체가 사법리스크 올가미에 엮여 있는 데 대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경기지사, 성남시장을 지낸 사람이 그 당시 분당에 선거구가 있는데도 인천에 공천받아서 국회의원이 된 것은 민주당 전체의 자존심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지금 민주당에 여러 가지 갈래가 있지만 이 대표의 마음과 결단에 달린 것 아니냐"며 "당을 살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당을 열어놓겠다 결심하면 모든 것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 전 대표는 이날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수십 년 동안 견지해 왔던 다당제라는 철학을 스스로 팽개쳤을 때 잃는 것도 있을 것 아니냐"며 "너무 공학으로만 보지 않는 게 좋다"고 쏘아붙였다. 비이재명계 의원모임 '원칙과 상식'도 정의당, 시민사회단체 등에 '선거법 퇴행 반대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하며 세력화에 나선 상태다. 다만, 손 상임고문은 정치권 복귀 계획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내가 무엇을 하겠냐"며 거리를 뒀다.
이 같은 공세에 처한 이 대표는 일단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달 28일 유튜브 라이브에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발언한 이후 당 안팎에서 거센 반대에 직면하자 선거제와 관련해 차분히 여론 동향을 살피는 모습이다. 지난달 30일 선거제를 다룬 당 의원총회에서도 이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
당분간 선거제 개정 논의는 표류할 전망이다.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민주당의 내부 입장이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의 협상도 마찬가지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MBC라디오에서 "비례제는 1월 말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며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하면서 당내 합의와 여야 간 협의를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