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캐세이) 물리친 양규

입력
2023.12.04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기내 서비스 후식으로 주는 홍콩의 캐세이퍼시픽(Cathay Pacific)은 1960년부터 우리나라에 취항, 낯설지 않은 항공사다. 그러나 사명 중 캐세이의 어원이 거란(契丹)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契丹을 중국어로 읽으면 ‘치단’인데 이는 거란이 스스로를 키탄(Khitan) 또는 키타이(Khitai)로 부른 걸 한족이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11세기 북중국을 장악한 거란은 1125년 금나라에 쫓겨 서쪽으로 이동해 카라키타이(서요)를 세우고 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다. 이 과정에서 키타이나 카타이란 말이 서양에선 중국을 뜻하게 된다.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서 북중국을 카타이(Cathai)로 지칭했다. 영국계 창업자가 항공사 이름을 정하며 차이나(China) 대신 ‘캐세이’를 선택한 연유다.

□ 키타이가 서양에선 중국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로 거란의 위세는 높았다. 그런 거란이 1004년 송과 강화조약을 맺은 뒤 고려를 침공했다. ‘코리아(Korea) 키타이 전쟁’인 셈이다. 이때 세계전쟁사에 길이 남을 신출귀몰의 작전을 편 이가 양규다. 그는 1010년 흥화진(현 평북 의주)에서 40만 명의 거란 대군에도 성을 굳게 지켜냈다. 이어 거란군이 남진하자 흥화진을 나와 1,700명의 병사를 이끌고 6,000명이 지키는 곽주성을 공격, 성에 갇힌 7,000명의 백성까지 구해 냈다.

□ 성을 함락시키려면 성을 지키는 병력의 4배는 돼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4분의 1 군사로 이룬 곽주성 승리는 기적이다. 이후에도 양규는 돌아가는 거란군을 무로대, 여리참, 애전 등지에서 공격하며 한 달 새 일곱 차례 적과 싸워 7,000명 가까이 베고 포로 3만여 명을 구했다. 그의 목적은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백성들을 살리는 것이었다. 고려거란전쟁 1차와 3차전 영웅이 서희와 강감찬이라면 2차전은 양규다.

□ 고려는 당시 세계 최강국 거란을 물리쳤다. 이를 다룬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인기다. 그동안 조선시대에 편중됐던 TV 사극의 무대가 고려로 확장된 건 반갑다. 지금 우린 화폐 인물도 모조리 조선시대다. 우리 역사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