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만리 타향에서 외롭게 지내시던 아버지가 고향 산천으로 돌아오셔서 여한이 없습니다. 이제 부디 편히 쉬십시오."
태평양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강제동원 희생자 고(故) 최병연씨 유해가 4일 고향으로 돌아왔다. 1942년 11월 태평양 섬 타라와로 끌려간 뒤 이듬해인 1943년 11월 25일 전사한 지 80년 만이다. 이날 오후 2시 전남 영광군 영광문화예술의 전당에선 최 씨의 추도식이 거행됐다. 이날 추도식에는 고인의 유족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 영광군수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상민 장관은 추도사를 통해 "80여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고 최병연씨의 명목을 빈다"며 "또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의 영면도 함께 기원한다"고 말했다.
80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온 고인은 만 24살이던 1942년 11월 당시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남태평양 타라와섬에 일본 해군 노무자로 끌려갔다. 고인은 전쟁터로 끌려가면서도 가족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둘째 아들 최금수씨는 "아버지께선 돈을 벌어 호강시켜 주겠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셨다고 들었다"며 "결국 그게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가족은 그 뒤로 아버지 소식을 듣지 못했다. 금수씨는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그저 어머니가 끌어안고 있던 전사통지서 뿐"이라고 했다.
금수씨에게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는 평생의 한이었다. 아버지의 유해가 비로소 그의 가묘에 안치되자 "평생의 한을 풀었다"고 했다. 금수씨는 "형제들이 밥을 굶고 있을 때 집 뒤편에 숨어 남몰래 울고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인생의 고비마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해 원망도 많이 하고 그립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보고 싶고 불러고도 싶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다"며 "부디 하늘나라에선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한쌍의 원앙처럼 지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금수씨는 끝으로 "애타게 강제징용 피해자의 소식을 기다리는 유가족들의 한도 풀리긴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정부의 유전자(DNA) 대조 작업 결과 타라와 전투에서 사망한 한국인은 현재까지 1,117명으로 파악됐다. 희생자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는 것은 최씨가 첫 사례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이날 추도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 최병언씨가 유골로나마 가족들 품으로 돌아온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그러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유골은 1,116구나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정부는 타라와를 비롯 하이난섬, 우키시마호, 조세이 탄광 등 피해자의 유골이 단 한 명도 남김없이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며 "또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고 상응하는 배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