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없는 ‘신길온천역’... 주민들은 왜 이름 바꾸기 싫다고 했나

입력
2023.12.04 14:47
안산시·국토부가 '능길역'으로 개명 시도
온천 발견자 후손, 주변 아파트 주민 반대
법원 "구체적 피해 발생한다 볼 수 없어"

'온천 없는 온천역'으로 잘 알려진 경기 안산시의 신길온천역(수인분당선·4호선 환승역). 당국이 역 이름을 바꾸려하자 일부 주민들은 "이름을 그대로 둬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소송으로 풀 수 있는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면서 주민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왜 온천도 없는 이곳에서 신길온천역이란 이름을 지키려고 했을까.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 신명희)는 신길온천역 인근에 거주하는 정모씨 등 주민 11명이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역명개정처분 취소 소송을 10월 12일 각하했다. 재판부는 "(행정소송은 행정처분의 적정성을 따지는 소송인데) 지하철역 이름 개정은 행정소송의 대상인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신길온천역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지질학자였던 고 정장출 박사가 1985년 해당 역 인근에서 온천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안산시에 온천발견 신고를 했지만, 이곳에 주택단지를 짓고자 했던 안산시는 온천지구 지정을 하지 않아 실제 온천시설이 들어설 수 없었다. 그러나 역 이름은 그대로 남아 온천욕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허탕을 치는 상황이 반복됐고, 역사에는 '신길온천역에는 온천이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는 촌극까지 이어졌다.

결국 안산시는 '능길역'으로 역명 개정을 추진했고, 2021년 국토부는 이름 변경을 고시했다. 이에 정 박사의 후손들은 온천수 발견 권리를 상속받았다며 역명 개정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신길온천역’ 이름이 들어간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도 역명 개정에 반대하며 가세했다.

법원은 그러나 정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명 변경이 이들의 구체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역명 개정은 공공시설인 철도시설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이용하기 위한 공익을 목적으로 하므로, 지역주민들이나 이해관계인의 권리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들이 입는 불이익은 온천에 대한 홍보·광고 효과를 박탈당하거나 역세권 아파트라는 프리미엄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불이익은 간접적이거나 사실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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