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도쿄지검 특수부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 수사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아베파 소속 의원 여러 명이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통해 불법성이 짙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검찰이 파악했기 때문이다. 도쿄지검은 전국에서 검사 인력을 지원받는 등 수사력을 확충하고, 자민단 관계자 다수를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3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쿄지검은 아베파 소속 의원 10명 이상이 아베파 주최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모인 금액의 일부를 다시 가져가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했다. 정치자금규정법 위반(허위 기재 등) 혐의 공소시효 이내인 최근 5년간(2018~2022년), 이들이 아베파 행사를 활용해 만든 비자금 규모는 총 1억 엔(약 8억8,4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이 사건 수사는 “자민당 내 5개 계파가 정치자금 모금액 일부를 보고에서 누락하고 있다”는 가미와키 히로시 고베대 교수의 고발을 계기로 시작됐다. 자민당 계파는 연 1회 개최하는 모금 행사에서 한 장당 20만 엔(약 177만 원)에 해당하는 ‘파티권’을 지지 단체나 기업 등에 판매하는데, 이때 소속 의원마다 할당량을 부과한다. 이를 넘는 초과분은 계파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누락해 왔다는 게 고발 내용이었다.
수사해 보니 단순 누락이 아니라, 초과 금액을 의원 개인이 정치자금으로 쓴 사실이 발각됐다. 아사히신문은 자민당 니카이파도 이 같은 관행이 있었지만, 의원 사무소 회계 장부에 ‘기부금’으로 기재했고 사용처도 밝혔다고 전했다. 반면 아베파 의원들은 사무소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비자금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산케이신문은 도쿄지검 특수부가 아베파의 모금 행사 전용 계좌를 이미 파악했고, 향후 수사를 통해 정확한 비자금 규모 등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13일 임시국회가 끝나면 다수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자민당은 검찰 수사가 불러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식 명칭이 ‘세이와정책연구회’인 아베파는 의원 수가 100명에 이르는 자민당 내 최대 계파로, 2000년 이후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4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가 결정적이므로 아베파는 ‘의원 수의 힘’을 내세워 일본 정치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런 아베파가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자민당 정치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흔들 공산이 크다. 아베 전 총리나 호소다 히로유키 전 중의원 의장 등을 비롯, 문제의 관행을 묵인했을 과거 아베파 수장들은 이미 사망했다. 아사히신문은 “자민당이 망가지냐, 마느냐의 문제”라는 한 전직 각료의 위기의식을 전했다.
하지만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책임 회피성 발언만 내놓고 있다. 이 사안의 첫 보도 때부터 그는 “각 계파가 잘 설명하라고 지시했다”고만 말했고, 이 때문에 ‘자민당 총재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종료된 후에도 취재진에 “국민에게 의구심을 갖게 해 매우 유감”이라며 “상황을 파악하면서 당 차원 대응도 생각하겠다”고 밝히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