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가 1일 무산됐다. 국회 표결 직전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 면직하면서다. 국민의힘은 이 위원장이 수개월간 직무정지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반면 탄핵을 벼르던 더불어민주당은 허를 찔렸다. 지난달 탄핵소추안을 철회하는 '묘수'를 동원해 재차 표결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방통위를 고리로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방송지형을 만들기 위한 여야의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전날 윤 대통령에게 구두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하루 만에 면직안을 재가했다. 이 위원장 탄핵소추를 표결할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불과 3시간 전이다. 탄핵 대상이 사라지면서 민주당은 분루를 삼켰다.
이 위원장은 이후 기자회견에서 "거대 야당이 국회에서 추진 중인 나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뤄질 경우 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개월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월 탄핵소추 이후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까지 6개월간 직무정지당한 사례를 감안한 조치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재 결정 전까지 대통령이 교체도 할 수 없다.
이 위원장 탄핵을 놓고 여야는 기발한 법기술을 동원해 일진일퇴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이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전격 철회했다. '24시간 이후 표결'을 차단하기 위해 본회의를 당일에 끝낸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은 이튿날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자진 철회하며 탄핵의 불씨를 살렸다. 철회하지 않으면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탄핵소추안 재발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여당이 응수했다. 전날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이 다시 본회의에 보고되자 '이 위원장 사퇴'라는 초강수로 탄핵의 빌미를 원천 차단했다.
여야는 '이동관 탄핵'을 내년 총선의 전초전으로 보고 총력으로 맞붙었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공영방송 등이 '좌편향'돼 방통위 주도의 '방송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것이 여권의 인식이다. 단순히 방통위 업무 마비를 막기 위해서라면 이 위원장을 면직하지 않더라도 현재 공석인 국회 추천 몫 방통위원 3명(여당 몫 1명, 야당 몫 2명)을 임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방통위는 '여2 대 야2'로 팽팽하게 맞서 방송 정상화는 요원해진다.
민주당 또한 유리한 방송지형을 지키기 위해 거대 의석을 동원했다.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 입김을 차단하겠다는 '방송3법'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방치하다가 정권이 바뀌자 밀어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방송3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민주당과 맞섰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 면직 조치에 “국회와 국민을 우롱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재명 대표는 취재진과 만나 “이렇게 꼼수를 쓸 줄은 몰랐다”면서 “예상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국정수행 행태”라고 비판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온갖 불법을 저질러 놓고 탄핵안이 발의되자 뺑소니를 치겠다는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제2, 제3의 이동관도 모두 탄핵시키겠다”고 예고했다.
반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절차적, 내용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탄핵을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여서 연말 예산 국회를 앞두고 국회 일정에 차질을 초래했으면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이 공당의 태도”라고 맞받아쳤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탄핵의 진짜 이유는 방통위를 식물 기관으로 만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송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 수사를 막기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는 정치적 횡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