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억만장자'가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최초로 이겼다

입력
2023.12.0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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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억만장자의 상속 재산, 직접 모은 재산 규모 추월
스위스 금융그룹 UBS '억만장자 조사' 시작 이래 최초
"상속받은 억만장자, 기부보다 투자를 더 중시"

‘상속된 부(富)'의 위력이 ‘스스로 일군 부’의 힘을 눌렀다. 지난해 5월 이후 1년간 전 세계에서 53명이 1,508억 달러(약 196조 원)를 가족에게 상속받아 새로 억만장자가 됐다. 같은 기간 창업·투자 등을 통해 스스로 억만장자가 된 건 84명으로, 이들이 모은 재산은 1,407억 달러였다. 부를 새로 창출할 기회는 줄어들고 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스위스 금융그룹 UBS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UBS는 매년 전 세계 부자들의 재산을 추적 조사하는데, 신규 억만장자의 상속 자산이 스스로 축적한 자산을 넘어선 건 조사를 시작한 지 9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 공통이었다. UBS는 자산 규모가 10억 달러(약 1조 3,000억원) 이상인 부자를 억만장자로 분류한다.

UBS의 글로벌 자산 관리 전략 고객 책임자 벤자민 카발리는 "부자들의 고령화로 부의 상속이 빠르게 진행되는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20~30년간 1,000명 이상의 부자들이 자녀에게 약 5조2,000억 달러의 재산을 물려줄 것으로 UBS는 예상했다.

창업을 비롯해 부자가 될 관문이 점점 좁아지는 영향도 크다. 보고서는 지난해 기업공개시장(IPO) 침체로 회사 상장 기회가 제한된 것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UBS의 투자책임자 맥스 쿤켈은 “고금리가 이어지고 경제적·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선 부의 창출이 더욱 어렵다는 의미”라고 했다.

자수성가한 1세대 억만장자와 재산을 물려받은 2세대 억만장자의 인식 차이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부를 활용한 자선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1세대는 68%였고, 2세대는 32%였다. 2세대의 68%는 "물려받은 사업과 자산을 지키거나 더 키우는 것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인공지능(AI)과 친환경 기술 등 미개척 분야에 도전적으로 투자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전 세계 억만장자는 전년 대비 7% 증가한 2,544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총자산은 9% 늘어난 12조 달러였다. 조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유럽이 억만장자의 자산 성장을 주도했는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럽산 사치품에 대한 보복 소비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위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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