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지원' 기후 기금 출범했지만… "필요액 1%도 안 돼, 마지못해 수용"

입력
2023.12.01 00:29
개막 직후 '손실과 피해 기금' 출범
구체적 기금 규모 없이 기부에 맡겨
400조원 필요한데 4000억원 모금


기후변화 책임이 큰 선진국들이 기후 재난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을 금전적으로 돕기 위한 국제 기금이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그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벌써부터 거세다. 지원 액수나 방식이 결국 선진국 입맛에 맞게 결정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개막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8)에서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에 대한 세부 방안이 확정됐다.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은 지난해 11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COP27에서 처음 합의됐다. 그간 탄소를 많이 배출하며 경제 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이 기금을 거둬 기후 재난 피해를 입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누가 얼마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커 세부 이행 방안은 올해 COP28에서 결정하기로 미뤄뒀다.

최종 합의안 도출까지 한바탕 진통을 겪으리라는 일각의 예상과 달리, 이날 COP28에서는 개막 몇 시간 만에 세부 이행안이 승인됐다. 술탄 아흐메드 알자베르 COP28 의장은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며 “전 세계와 우리 노력에 긍정적인 추진력을 불어놓는 신호”라고 말했다.

그러나 WP는 이날 “개발도상국들이 이 방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합의안은 기금 모금을 위해 선진국에 국가 별로 구체적인 할당량을 결정하지 않은 채 각국의 자율 기부에 내맡겼다. 그 결과 이날 기부가 확정된 금액은 3억~4억 달러에 그쳤다. UAE와 독일이 1억 달러를 출연하겠다고 밝혔고, 미국(1,070만 달러), 영국(7,589만 달러), 일본(1,000만 달러)도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과학자들이 2030년 기후 재난 누적 손실 피해액으로 추정하는 2,900억~5,800억 달러(약 377조~754조 원)의 1%도 안 되는 금액이다. WP는 “이날 공개된 기부 약속은 개발도상국의 연간 기후재난 피해 비용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추가적인 기부 약속이 발표돼 기금 규모가 의미 있게 커질 수 있는지 평가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자원연구소의 프리티 반다리 수석 연구원은 WP에 “현 시점에서 나오는 기부 약속은 해당 국가들이 향후 더 많은 기후 협상에 나갈 준비가 돼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선의의 자금”이라며 “더 넓은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