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목사인 존 리버스는 굶주려 죽어가는 여인을 집 안으로 들인다. 그의 누이들이 돌봐서 살아난 여인은 '제인 엘리엇'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목사는 그녀를 교사로 일하게 해주고 소박한 집도 마련해준다. 서서히 밝혀진 것은 그의 남매와 제인이 고종사촌이라는 것이다. 제인은 막대한 돈을 백부로부터 상속받는데, 감사의 뜻으로 은인인 존 남매에게 아낌없이 나눠준다. 부자가 된 존은 미남자에 지성적이며, 큰 부잣집의 아름다운 외동딸인 로저먼드의 흠모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구애를 뿌리치고 그는 제인에게 청혼한다. 그는 인도에서 선교하며 명성을 떨치려는 야심이 있는데 곱게 자란 로저먼드는 배필감이 아닌 것이다. 그는 신앙이 깊지만 독선적이었다. 제인은 청혼을 마다하는 대신, 험지에 "부목사로 따라가 돕겠다. 우리는 사랑이 없기에 결혼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부인을 데리고 가서" 완벽한 조력을 받고 싶었다. 그는 교리까지 동원해서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열변을 토하는데, 제인은 그만 감화되려고 했다. 그는 자신만만해져서 결단의 기도를 올리자고 한다.
하지만 그 기도를 통해 무의식의 바닥까지 내려간 제인은 지난해 결혼까지 갔다가 결별한 마음속의 신랑 로체스터가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를 듣는다. 결국 그녀는 로체스터를 향해 달려가고 존은 혼자서 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본명은 '제인 에어'. 존은 자기 과신을 멈추고 '충직한 부목사'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는 몇 년 후 낯선 나라에서 혼자 죽어갔다.
윌 스미스는 '할리우드의 오바마' 같은 흑인이다. 빌보드 1위에 오른 래퍼이고, 꼭대기에서 빛나는 배우다. 그는 아카데미상 정도가 못 이룬 꿈이었는데 지난해 후보가 돼 상을 탈지 말지 기다리다가 '악마를 만나고 만다.' 식장의 객석에 앉은 아내 제이다가 병에 걸려 부득이 삭발을 하고 다니는데, 시상하러 나온 코미디언이 삭발한 여군이 나오는 영화 "'G.I. 제인'의 속편(에 나오기)을 기대한다"고 농담한 것이다.
스미스는 좀 난처한 표정으로 "화나지만 참을게" 정도로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당장 무대로 나갔고, 크리스 록을 구타하고 욕을 연발하는 모습이 세계에 생중계되고 웹에 영원히 남게 됐다. 잠시 후 흥분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불리자 그는 무대에 다시 올라와 "방금 전에 덴젤 워싱턴이 (격언인) '네가 절정에 오른 순간 악마가 찾아와' 하고 말해줬다. 수치스럽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세계 영화사에 기록될 초대형 사고였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무엇일까. 혼자서 생각해보자 이상하게도 얼마 전 아시안게임 인라인 스케이트 결승이 떠올랐다.
정철원 선수는 잘했지만 결승선 코앞에서 환호하는 바람에 0.01초 차로 금메달을 놓쳤다. 기적적으로 승리한 대만의 황위린은 "나는 끝까지 싸우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며칠 후의 대만 전국체전에서 재방송 같은 '판박이' 장면을 만들었다. 그 역시 만세를 부르다가 0.03초 차로 금메달을 내놓은 것을 보면 끝까지 오만과 방심을 다스리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이렇게 생각하자 소설 '제인 에어'와 윌 스미스의 한순간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잘 사는 건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