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부가 '인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미국 국적의 시크교 지도자를 미국 영토에서 암살하기 위해 정부 요원을 투입했다." 미국 검찰이 이 같은 수사 결과가 담긴 공소장을 29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시크교는 인도의 소수 종교로, 자치국가 건국을 주장해 인도 정부의 탄압을 받아왔다.
공소장 공개는 사안을 엄중히 보겠다는 미국 정부의 선언인 셈이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들여 온 미국과 인도와의 관계에 파열음이 날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검은 미국 시민권자인 시크교 지도자 쿠르파완 싱 파눈의 암살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인도 국적의 니킬 굽타를 기소했다. 공개된 공소장에 따르면, 굽타는 지난 6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 파눈을 살해하는 대가로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를 지불하기로 했다. 청부업자는 암살 첩보를 입수해 신분을 위장한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이었다. 감쪽같이 속은 굽타가 착수금을 지불하고 기다렸지만, 범행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 6월 체코에서 체포돼 미국 송환 절차를 밟고 있다.
굽타의 배후엔 인도 보안당국 소속의 상급 요원이 있었다. FT는 "굽타에 대한 인도 사법당국의 형사 기소를 기각하는 조건으로 암살을 맡겼다"고 보도했다. 수사 과정에서 지난 6월 캐나다에서 발생한 또 다른 시크교 지도자 하디프 싱 니자르의 총격 살인 사건에 인도 정부가 개입한 정황도 확인됐다. 상급 요원은 굽타에게 파눈의 주소를 알려주면서 니자르의 시신을 찍은 영상을 함께 보냈다. 상급 요원과 굽타는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또 다른 시크교도 3명에 대한 살해 계획도 모의했다. 기소 내용이 사실이라면 인도 정부가 다른 나라 영토에서의 조직적 암살을 사주한 셈이 된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과 인도 사이에 금이 갈 가능성이 크다고 WSJ는 전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엔 미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10월엔 에이브릴 헤인즈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차례로 인도에 보내 암살 사건 책임자 엄벌을 요구했지만, 인도 정부는 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인도에서 9월에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와의 관계에 공을 들여왔다. 이번 사건이 조기에 정리되지 않으면 외교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캐나다 정부가 지난 9월 "니자르 피살 사건 배후에 인도 정부 요원이 있다"고 공개한 후 양국 정부가 외교관을 맞추방하며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