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A씨는 올해 초 법원으로부터 ‘경매 개시 안내’ 통보를 받았다. 이후 경매를 통해 낙찰받은 새 집주인은 즉시 명의를 넘길 것을 요청했다. 계약 시 이 집은 경매에 넘어가도 보호받을 수 있다던 공인중개사 말은 거짓이었다. 곧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라 A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거지원종합센터였다. 다행히 A씨는 우선공급 대상자에 해당됐고, 기존에 살던 주택과 비슷한 면적의 인근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서울 화곡동에 거주하는 B씨는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나 이사 준비를 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전세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실소유자인 신탁회사로부터 조속히 집을 비워 달라는 통지를 받았는데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장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상담을 신청했고, LH로부터 공공임대주택 긴급주거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살 곳을 마련했다. B씨는 이곳에서 저렴한 임대료로 최장 20년을 거주할 수 있다.
30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따르면 11월 중순 기준 총 9,999건의 전세사기 피해가 접수돼, 이 중 8,284건이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위원회는 연말까지 피해자가 1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는 지난해 말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전국으로 확대됐고,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피해자의 약 70%가 사회초년생인 청년층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
이에 LH도 6월 1일부터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된 것을 근거로 피해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각종 제도를 마련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LH 지원책은 ①피해자가 현 거주지에서 지속해 거주할 수 있도록 LH가 직접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매입한 뒤 피해자들에게 임대하는 방식 ②매입이 어려운 경우 피해자에게 인근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 등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LH는 8월부터 이달 초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부터 사전협의신청 141건을 받아 피해주택 매입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매입신청은 해당 주택에 임차인으로서 계속 거주하기를 원하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다. LH가 피해자로부터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경ㆍ공매에서 피해자를 대신해 주택을 낙찰받은 후 공공임대주택으로 다시 제공하는 형태다. LH는 소유권을 취득한 뒤 시세 대비 30~50% 수준의 저렴한 임대조건으로 20년간 공급한다.
특별법 효력이 있는 2025년 5월 말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된 사람은 전국 각 지역의 LH 지역본부 및 지사에서 주택매입을 신청할 수 있다. LH 콜센터(1600-1004)를 통해 관할 지역의 전세사기 피해지원 담당자를 안내받아 상담을 진행하고, 방문 및 우편으로 신청하면 된다.
물론 LH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주택을 매입한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피해자가 약 3개월에서 1년간의 경ㆍ공매 유예 신청을 해 아직까지 본격 경ㆍ공매 절차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LH 측 설명이다. LH는 유예기간 만료가 도래하는 내년 초부터는 경ㆍ공매 신청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
LH는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주택 매입 기준도 완화했다. 기준상 지어진 지 10년 이내의 주택만 매입해야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경우 건물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기존에 적용하던 지리적 여건ㆍ주택 상태ㆍ주변 정주 환경 등 매입 시 제외 요건을 최소화하고, 매입 절차도 간소화해 기간도 2~3개월 단축한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LH가 매입하지 않았던 주유소ㆍ가스충전소ㆍ숙박시설 인접 주택, 기계식 주차장 등 유지관리에 추가 비용이 드는 주택 등도 매입 대상에 포함돼 대다수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LH의 주거지원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다만, 불법 건축물, 반지하 및 전용면적 14㎡ 미만 최저 주거기준 미달 주택, 안전상의 하자 등 중대 결함이 있어 임차인이 계속 거주하기가 불가능한 주택은 매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LH가 경ㆍ공매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매입 제외 요건에 해당하는 피해자에게는 인근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한다. 신탁사기를 당했거나, 이미 경ㆍ공매가 완료돼 피해주택 매입이 불가능한 상황도 포함된다. 피해자는 최대 20년간 거주할 수 있으며 시세의 30~50%에서 임대료가 결정된다.
강제퇴거 위기에 처해 당장 갈 곳을 잃은 피해자는 LH로부터 공공임대주택 긴급주거지원도 받을 수 있다. 최장 2년까지 가능하며, 임대보증금 없이 월 임대료만 시세의 30% 수준에서 결정된다. 2년 만기가 지나면 몇 가지 평가를 거친 뒤 우선공급대상자로 전환된다. 현재 전국에서 149가구가 인근 공공임대주택 우선공급 또는 긴급주거지원을 받았다.
LH 인천주거지원종합센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하루빨리 일상에 복귀하도록 접수 즉시 지원에 나서고 있다”면서 “경ㆍ공매 유예가 끝나기 시작하는 내년부터는 지원신청이 쇄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LH는 폭넓은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정부와 협의해 제도 개선도 꾸준하게 추진 중이다.
복잡한 권리 관계 때문에 피해지원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가구주택 거주 피해자들을 위해 매입 신청 요건 완화를 검토한다. 아울러 피해자가 원하는 공공임대주택이 없을 때를 대비해 거주를 희망하는 민간 임대주택을 물색해 오면 LH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해 피해자에게 재임대하는 방안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LH 고병욱 국민주거복지본부장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이 불안감을 덜고 이른 시일 내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