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정당 투표로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무게를 싣는 듯한 발언을 내놓자 당 안팎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지역구 득표와 연계하는 현행 '준연동형'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낙연 전 대표, 김부겸 전 국무총리까지 가세했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민주당은 29일로 예고한 의원총회를 하루 연기했다.
당내 비주류 혁신모임 '원칙과 상식' 소속 김종민 의원은 29일 페이스북에 "'약속이고 원칙이고 모르겠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덤비면 민주당은 영원히 못 이긴다"며 "아무리 선거에서 이겨도, 의석수가 많아도 신뢰를 잃으면 정치는 무너지는 것"이라고 썼다. 이 대표가 전날 "선거는 승부인데, 이상적인 주장을 멋있게 하면 무슨 소용 있겠냐"며 병립형 회귀를 시사하자 맞받아친 셈이다. 원칙과 상식도 입장문을 내고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더 달겠다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민의힘 이겨보겠다고 결의 따위, 약속 따위, 모른 체하면 그만이냐"고 비판했다.
친이재명계 의원들도 병립형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학영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선거제 개혁은 결코 당장의 유불리에 의해 판단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두관 의원은 "위성정당을 막고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지키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고, 송재호 의원은 "병립형 퇴행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다. 참패와 자멸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최소한 병립형으로의 퇴행은 막는 유의미한 결단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당 밖에서도 쓴소리가 쏟아졌다. 이 전 대표가 정치 양극화를 이유로 현행 제도 유지를 주장한 데 이어, 김 전 총리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선거제가) 후퇴하면 안 된다는 절박감, 후퇴를 막아야 하는 게 민주시민의 의무"라며 "민주당 지도부가 단호한 자세를 보여야 할 때라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선거제를 논의하려던 의총을 하루 연기하며 일단 시간을 벌었다. 30일 의총에서는 그동안 여론을 의식해 자제했던 '병립형' 회귀 주장이 힘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중진의원은 "연동형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 못 하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의총에서 병립형 의견이 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민주당이 갈팡질팡하면서 여야 선거제 협상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비례대표제 논의에 묻혀 선거구 획정을 위한 시도별 의원정수는 손도 대지 못했다. 다음 달 12일부터 22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데, 예비후보들은 정확한 지역구도 모른 채 선거운동에 나서야 할 판이다. 이에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가 자체적으로 선거구 획정작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