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가 입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곤(갑툭튀)' 합니다.
흔히 어린 시절 윗세대를 '꼰대'라며 싫어하곤 하죠. '라떼=꼰대'라 "난 절대 '나 때는' 따위로 훈계하는 꼰대는 되지 않을 거야"라고 자신했을 텐데 좀처럼 '라떼는 말이야'를 피할 수 없는 걸까요.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 'X세대', 'M세대', 'Z세대' 그리고 '알파 세대'까지 세대는 변하는데 "나 때는 말이야"라는 회상을 입버릇처럼 읊는 '라떼 서사'엔 심리학적 배경이 있답니다.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40세 이상의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시절 등을 되뇌게 했을 때,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10~30세)의 비교적 어린 날 기억을 가장 많이 떠올리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이론은 데이비드 루빈 미국 듀크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1980년대에 처음 만들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회고 절정기에 즐겼던 음악, 영화, 책 등이 평생 동안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2010년대 이후 시작된 복고 콘텐츠의 열풍 기억하시나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1990년대 가요 리메이크, 약과나 달고나 등의 간식까지. 현재 주요 문화 소비층인 3040세대가 90년대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현상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속에서 현실을 위안받으려는 '회고 절정'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왜 나이가 든 사람들은 최신의 기억이 아닌 청소년기에서 20대까지의 기억을 더 잘 간직하게 되는 걸까요. 학계에 따르면 회상 절정에는 다양한 이론적 가설이 존재합니다.
우선 기억은 급격한 변화 후의 안정기 동안 상대적으로 가장 잘 기억되기 때문이라는 '인지적 가설'이 자주 언급되고요. '인생 각본' 이론에 따르면 성인 초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시작하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게 기억되는 측면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어른들이 젊은 세대를 보고 '라떼'를 언급하는 건 단순히 나이, 위계, 권위, 전통을 앞세우기 위한 게 아니라 지나간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가장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는 심리적 기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참고 문헌
-Rubin, D. C., Rahhal, T. A., Poon, L. W. (1998). Things learned in early adulthood are remembered best. Memory & Cognition. 26 (1). 3–19쪽.